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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신문 보기-1995년 9월 22일 22면] 옥보단 4대 의문?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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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제대로 다 챙겨입지 못한 채 건장한 말에 몸을 맡긴 두 여인. 둘 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고삐와 안장도 없이 속도감을 만끽하고 있다.

1995년 국내 개봉해 상당한 인기를 누렸던 성인영화 ‘옥보단’의 지면 광고다. ‘옥보단’은 성인영화 침체기였던 1990년대에 40만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이끈 화제작이다. 관객 중에는 중년층도 상당수였다. 국내에서 성인영화가 활개를 쳤던 시기는 1980년대다. ‘뽕’ ‘변강쇠’ ‘어우동’ 등 에로틱한 사극이 그 정점에 있었다. 90년대 들어 시들해진 성인영화에 다시 불을 지핀 것이 바로 홍콩에서 날아온 아크로배틱 사극 ‘옥보단’ 이었다.

마른 장작에 불을 지피듯, 어떤 점이 관객들을 자극했을까. 먼저 광고 상단에 적힌 ‘옥보단 4대 의문?’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4대 의문은 이렇다. “‘펜트하우스(PENTHOUSE)’가 이 영화를 왜 4개월씩 연재했는가” “이 영화의 원작소설은 400년 동안 금서였는가” “영화제작사인 ‘골든하베스트’가 왜 이 영화를 제작했나” “홍콩 톱여배우들이 왜 옷을 다 벗었나”. 이 문구들은 이 영화가 얼마나 야한지를 질문 형태로 돌려 설명한 것이다.

‘SEX AND ZEN’이라는 제목으로 유럽에서 1992년 개봉한 ‘옥보단’은 유명 성인잡지 ‘펜트하우스’에 꽤 오랜 기간 연재됐을 정도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국내 개봉작의 엔딩 크레디트에는 큼지막하게 ‘Recommended by PENTHOUSE’(의역하자면 ‘펜트하우스 강추!’)라는 자막이 붙어 있다. ‘옥보단’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황비홍5’(1994), ‘첨밀밀’(1996), ‘이연걸의 보디가드’(1994), ‘폴리스 스토리3’(1992) 등을 만든 홍콩 최고의 영화사 ‘골든 하베스트’가 야심 차게 내놓았던 종합오락 성애물이었다는 점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금병매’ ‘소녀경’과 함께 중국의 3대 성애 소설로 꼽히며 400년 동안 금서로 지정됐던 ‘옥보단’이 영화화됐다는 것 또한 관객들의 기대감을 높였다.

어느새 전설이 되어버린 홍콩 에로 무비의 걸작 ‘옥보단’은 당대 한국 관객들에겐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개봉 당시 노골적 성애 장면 묘사로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이 영화의 베드신은 섹스 그 이상의 것을 담고 있었다. 섹스가 단순한 교접 행위가 아니라 육체의 격렬한 충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몇몇 장면은 아크로배틱을 연상시킬 만큼 고난도의 체위와 테크닉으로 버무려져 있다. 특히 주인공 미양생이 자신의 왜소한 ‘물건’에 말의 생식기를 붙인다거나, 나체로 천장에 매달린 끈을 타고 내려와 목표지점에 정확하게 내꽂는 장면, 쇠사슬을 돌리며 정사를 벌이는 장면 등 과장되고 기발하게 묘사된 성행위는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불가능해보이는 체위와 생생한 교성 역시 성 본능을 자극했다.

‘옥보단’은 마초적 상상력과 기발한 아이디어, 고전적 페티시가 잘 버무려진 ‘종합 선물 세트’ 에로물로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반면 영화 줄거리는 전통적인 권선징악을 따른다. 몽골이 지배하던 원나라 때 타락하고 문란한 시대적 분위기를 배경으로 명문가 자제인 미앙생이 벌리는 엽색 행각이 옥보단의 주요내용이다. 주인공인 미앙생은 순진하고 남자를 모르는 여자 옥향과 결혼하면서 차츰 성에 눈을 뜬다. 결국 수행을 핑계로 집을 나와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들을 탐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작은 ‘물건’이 콤플렉스였던 그는 말의 ‘거근’을 자신에게 붙이는 수술을 감행하고 자신감 있는 남자로 다시 태어난다. 온갖 대단한 성적 모험을 거친 그는 결국 창녀가 되어버린 아내와 맞닥뜨린다. 미앙생이 집을 나간 후 외로운 밤을 보내던 아내 옥향은 하인과 불륜을 저지르고 집에서 쫓겨나 창녀촌에 몸을 맡긴다. 여주인으로부터 성기를 전수받은 후 어떤 성교불능자라도 성행위를 가능케 하는 명기로 이름을 떨쳤지만 남편을 다시 만나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자살을 택한다. 미앙생도 결국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불교에 귀의한다.

극장에서 ‘대박’을 터뜨린 ‘옥보단’은 비디오로 출시된 이후에도 스테디셀러에 이름을 올렸다. 홍콩 성인영화가 큰 인기를 누린 것은 아직까지도 이례적인 일로 꼽힌다.

홍콩에서만 10편 가까이 제작된 ‘옥보단’시리즈는 중화권 톱 여배우를 배출한 것으로 명성이 높다. 홍콩 여배우 서기(38·舒淇)가 대표적이다. 1996년 홍콩의 유명 오락영화 제작자 겸 감독 왕정(59·王晶)이 제작한 ‘옥보단2’을 통해 서기가 데뷔했다. ‘옥보단2’는 나름 야심적인 프로젝트였지만 엽기적 섹스에만 초점이 맞춰져 흥행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서기는 승승장구를 거듭해 장만옥(50·張曼玉)·장백지(34·張柏芝)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톱스타로 성장했다.

2011년에는 ‘옥보단3D’가 개봉했다. 한층 더 노골적인 성행위 장면을 3D영상으로 볼 수 있다니 참 엄청난 발상이다. 하지만 소문난 잔칫집에 먹을 건 없었다. 국내 개봉 후 관객 6만명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3D 기술로 무장은 했지만 일본 배우들의 작품성과 연기력이 전작만 못했다는 평이다. 온라인으로 차고 넘치는 일본 성인비디오, 포르노 영상과의 차별화에도 실패했다는 게 영화전문가들의 평가다.

한영혜 기자 sa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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