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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대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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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검정수건을 쓰고, 그 위에 지화를 꽂은 적색갓을 쓰고, 몸엔 홍색천익을 입고.홍대를 맨 무당이 신당에 들어간다. 왼손에 부채, 오른손에 방울과 제금을 든 그녀는 잽이들의 장구장단에 맞춰 춤추며 「만세받이」을 시작한다….
팔도신령님 오실적에 인의 안당은 유씨안당… 비나이다 비나이다 산천신령 부근님들 약소한 정성 받으시와….
최근에 서울의 「공간사랑」에서는 꼬박 보름동안 난데없는 굿잔치가 벌어졌었다. 그것은 완연한 어제의 세계에 속하는 것이면서도 이상하게도 관중을 흥건히 매료시키는 뭔가가 있었다.
엊그제 까지만 해도 1년내내 우리는 무속 속에 묻혀 있었다. 정초의 다예와 보름의 동제로 시작하여 한식에 성묘하고 5월엔 산신제나 당굿,삼복중에 약수터를 찾아 산신령에게 고사지내고 ,7월 중원엔 조상제를, 추석엔 천신제례,10월 상달의 성조풀이‥·.
그 뿐이랴, 마을의 국사당에서 지내는 천군제에 산신제 도당굿을 올리고, 시장이 잘되라는 별신굿이나 호남의 당산제, 강원의 성황제, 황해도의 산천제, 충청도의 산제. 나라가 잘되기를 비는 나라굿, 사자의 한을 풀어주는 지노기굿, 복을 비는 재수굿…. 그래서「신들린다」 「신이난다」 「신바람난다」「신명나다」는 말을 우리는 예사로 한다.
굿은 세종에서 민비에 이르기까지 궁중에서도 흔했다. 유명한 장희빈은 아예 신당까지 차려 놓았었다.
그러나 굿은 어디까지나 서민들의 토속이었다. 한때도 편히 살지 못한 그들에게 시름을 잊게하고, 꿈을 안겨준것은 옥황상제요, 성주요, 칠성신이요 최영장군, 성황님이었다.
어-귀엽고 반갑고 반갑고도 귀엽구나…오시는 길 명주고 가시는 길 복주고 상성이면 메고 풍파면 걷어서 크게 소원 이뤄주고 가지도 도웁고 맘과 일과 잘 받들게 도웁고 에-약소한 정성 태산같이 받고 잘 도와보니 염려 말고 걱정 말라신다. 쉬-.
이렇게 신령님의 말씀이 신들린 무당의 입을 통해 나오면 가난과 억압이 맺혀놓은 마음의 주름이 활짝 펴지는듯 했으리라.
다행히 천지사이에 신령님도 많았다. 근심걱정거리의 수만큼이나 많은 신들을 옛사람들은 만들어 냈다고 할 수도 있다. 부락제에서 모시는 신만도 l백9종이나 됐었다.
뭔가를 믿어야만했던 옛 사람들은 부처님을 믿게 했고, 그것만으로도 모자란듯 어느 사찰에나 칠성각 또는 삼성각이 있게 하였다.
순조때엔 궁에 등록된 무당이 2천6백명이었다고 한다. 그가 일제 때에는 1만2천4백명으로 늘어났다. 물론 그중에는 얼치기 선무당도 상당히 끼어있었을 것이다. 무속을 그냥 원시적인「샤머니즘」이라고 일축해 버릴 수 있을 것인가. 부끄러운 미신의 한 형태라 해도 그만이다.
그러나, 무속의 하나 하나가 모두 우리네 숨결속에 아직도 살아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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