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보도 행인들 사이렌 울려도 제 갈 길 … 차들 비켜주자 오토바이 끼어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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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급출동! 구급출동! 동서울터미널 교통사고 환자 발생!”

 지난달 22일 오후 2시 서울 광진소방서 구의119안전센터에 출동 지령이 떨어졌다.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기자와 대화를 나누던 이근형 소방교의 표정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지령 방송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 소방교와 유창선 소방사가 구급차에 올라탔다. 안전센터에서 현장까지는 2㎞ 남짓. 평소 3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사이렌 소리와 함께 구급차가 4차로로 들어섰다. 동승한 기자의 마음도 덩달아 급해졌다.

 사거리가 나타나자 운전을 하던 이 소방교는 마이크를 잡고 차량들에 양보를 요청했다. 다행히 차량이 많지 않아 소방차는 쉽게 사거리를 건널 수 있었다. 그러나 뒤이어 나타난 횡단보도가 복병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 상당수가 사이렌과 비켜 달라는 방송을 무시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이어폰을 귀에 꽂거나 스마트폰을 보면서 태연하게 구급차 앞을 지나치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저런 사람들은 그나마 양반이죠. ‘내 길, 내가 가는데 왜 자꾸 시끄럽게 구는 거냐’고 항의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시민들의 비협조적인 태도에 놀란 기자에게 이 소방교는 이 정도는 익숙하다는 듯 말을 이어 갔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예전엔 일부 사설 구급차가 비응급상황에서 사이렌 켜고 운행했잖습니까. 그런 기억 때문인지 급하다고 해도 일단 불신부터 하는 시민들이 많아요.”

 얼마 후 또 다른 사거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멀리서 한눈에 봐도 차량들이 꽤 많았다. 잠시 낮췄던 사이렌 음량을 다시 크게 높였다. 사이렌 소리가 도로를 가득 메웠지만 차량들은 꿈쩍도 안 했다. 수차례 안내방송을 하고서야 차들은 느릿느릿 길을 터 줬다. 그 사이로 구급차가 막 지나가려는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오토바이 한 대가 앞으로 끼어들었다. 오토바이는 뻥 뚫린 길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유 소방사는 “차량들이 길을 비켜 주면 그 틈을 타 구급차 앞이나 뒤로 끼어들려는 운전자들이 많다”며 “구급차에 자기 가족이나 친지들이 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저렇게 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출동 5분 만에 구급차는 현장에 도착했다. 환자는 다행히 경상이었다.

고석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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