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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더 행복한 책읽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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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전 이 난을 통해 '한국 출판계 편집자를 키우자'를 내보낸 뒤 독자들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추가로 들었다. 그 글에서 기자는 왜 머리 희끗희끗한 전문 에디터의 존재를 국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가를 물었다.

1년이 멀다 하고 출판사를 옮겨다니다가 40세 전후 소자본 독립을 해 출판사 1만여개라는 진기록에 또 다른 숫자 하나를 더하는 악순환을 끊는 과제야말로 국내 출판계 도약에 필수라는 문제제기였다.

그 글에서 기자는 근대 초입의 에디터로 육당 최남선, 소파 방정환 두 분을 꼽았다. 그것은 이기웅 열화당 대표의 도움말이었는데, 기사가 나간 뒤 출판 역사에 두루 밝은 동서문화사 고정일 대표가 자체 작성한 '한국의 에디터 20인'을 귀띔해줬다.

소개할 가치가 큰 그 자료에 따르면 육당.소파 외에도 개화기에 교과서 편집에 공헌했던 현채(1886~1925)를 빼놓을 수 없다. 춘원 이광수에게 '조선민족개조론'을 쓰도록 권유했던 '개벽' 편집장 차상찬(1887~1946)도 마찬가지다.

외솔 최현배가 아꼈던 정음사의 초대 편집장 윤재영(1918~?), 1910년대 말에 한성도서를 꾸렸고 나중에 문교장관을 지낸 오천석(1901~87)의 경우도 출판의 귀재였다.

오천석의 경우 칠십세가 넘어 '노란 손수건'을 기획하는 노익장을 보였다. 문제는 있다. 그들에게 에디터란 가욋일이었다. 때문에 지금 요구되는 '출판의 꽃'인 에디터의 역할 모델에서 거리가 없지 않다. 한 중견 출판인의 고백을 들어보자.

"출판사 오너들은 에디터를 기능직으로 안다. 원고 교정, 필자 섭외 등 허드렛 일을 하는 사원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전문 에디터의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한다. 때문에 나이가 들면 관리직으로 밀려날 것인가, 이 기회에 작은 출판사를 차려 독립할까를 선택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신구문화사 창업자 이종익(1923~90)은 '오너 겸 에디터'라는 한국형 에디터의 성취와 한계를 상징한다. 그는 박문서관의 유능한 편집자 출신.

그러나 신구문화사를 창업했던 그는 전문 에디터를 키우지 못했고, 때문에 지금 왕년의 명문 신구문화사를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다.

이웃 중국의 경우 모든 제조업을 제치고 출판업이 유망산업 1위로 꼽히는 역동성을 염두에 둬보자. 거기에 비해 지금 국내출판의 영세구조로는 최근 3~4년새 북섹션이 만들어지면서 30~40대 수요층이 형성되는 등 긍정적 변화에서 한걸음 더 내딛기가 어렵다.

2개월 전부터 '행복한 책읽기'에 '죽비소리'를 신설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예전보다 단행본 수준은 좋아졌으나, 일부 패션처럼 쏟아지는 책들 사이에서 옥석을 제대로 가리려는 작업이다.

물론 그런 비판적 작업은 논란을 부를 수 있다. '원세개'(지호)에 대한 비판(3월 8일자)도 애정을 전제로 한 비판이었음을 이해해줬으면 한다.

또 '톨스토이 단편선' 비판(3월 22일자) 역시 그렇다. 알고 보니 인디북이란 출판사는 정당한 저작권 계약없이 번역서를 펴낸 사실이 없었다.

그 기사는 번역자 박형규 전 고려대 교수를 제1세대라고 표현했는데, 그런 표현은 그를 낡은 번역가로 규정할 의도가 아니었음을 이 기회에 밝히려고 한다. 국내 출판의 도약과 리뷰기능 강화를 위한 '행복한 책읽기'의 행보에 주목해 주시길 바란다.

조우석 출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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