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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2411> <제61화>극단「신협」<4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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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5면

임화수는 내 얘기 중간중간에 그의 소견과 처지를 밝혔는데 대단히 추상적이고 비약적인데가 여러 곳 있었다.
한번 말을 시작하면 30분이나 1시간정도 계속됐는데 그 말중에는 「민족」이니 「조국」이니 「애국심」이니 하는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그리고 이렇게 문란한 문화계를 바로 잡을 이는 나밖에 없으며 따라서 나는 당연히 사리에 어긋난 짓을 하는 사람을 징벌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내가 임화수를 처음 만난곳은 부산피난시절이었다. 어느 국수집 2층에서 인사를 나누었는데 그때 그는 권총을 차고 있었으며 정보관계일을 본다고 말했었다. 3시간 넘게 얘기를 나눈뒤 임은 갑자기 내 손목을 잡고 『모든 상황을 새롭게 판단했다』며 『문총에 대항하는 새 단체를 만듭시다』라고 예상밖의 제의를 했다.
임은 저돌적이면서도 이렇게 단순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임의 이런 구상에 의해 탄생된것이 반공예술단이었다. 나는 처음 새 단체를 만든다는 임의 얘기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데 반공예술단 결성결과를 보니 임이 단장, 내가 부단장이었다.
연극『왜 싸워』사건·대통령모독소동·임화수의 담판등 이런 와중에서도 연극은 계속됐다. 59년1월, 『뜨거운 양철지붕위에 고양이』공연뒤 9개월만에 『안네·프랭크의 일기』의 막을 올렸다. 연극의 성격상 학생들이 많이 몰려와 연극은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전성기를 맞은 영화의 영향으로 연극은 날이 갈수록 지리멸렬의 상태였다.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다고나 할까.
더군다나 연기자들이 모두 영화로만 시선을 돌려 연극을 지킨다는 것은 지난의 일이었다. 우선 출연료가 엄청나게 차이가 나 영화의 경우는 한편 출연만으로도 몇개월의 생활이 될 형편이었다.
이런 분위기에 휩쓸려 나도 영화에 출연하게 됐다. 그 첫 출연영화가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였다. 그러나 영화에의 취향은 아무래도 맞지가 않아 많은 영화에는 출연하지 않았다.
그즈음 한 영화제작자가 나에게 영화연출을 의뢰해 왔었다. 마침 하유양원작의 『미풍』이란 연극을 연습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이런 섭외가 들어왔었다. 나는 「신협」「멤버」가 그대로 출연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의. 「신협」배우만 몽땅 출연하는 영화를 만들게됐다. 그 영화가 이진섭각색의 『육체는 슬프다』였다.
그때 주연배우는 김동원·박로·장민호·문정숙·조미령등이었다.
그런데 영화연출이란 연극과는 생판 다른것이어서 생각대로 연출이 되질 않았다. 설악산서 「로케이션」을 가졌는데 도무지 「카메라」「앵글」을 어디에다가 맞추어야 할지 막막했다.
실내장면은 그런대로 감을 잡아 촬영을 할 수가 있었는데 야외에만 나가면 「카메라」를 어디에다 놓아야 할지 막막할 뿐이었다. 「카메라」를 통한 세계가 어떤지를 모르니 당연했던 노릇.
이러니 영화가 제대로 될 리가 만무했다. 나중에 완성된 영화를 보니 「템포」는 느리고 장면은 튀고 엉망이었다.
나는 『아하, 영화도 영화대로 따로 공부를 해야 하는구나』하고 생각했다.
처음 이 영화를 만들때의 내 생각은 낮엔 영화를 촬영하고 밤엔 연극『미풍』을 연습,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렸으나 그게 마음대로 될리가 없었다.
연습을 겸하니 영화는 영화대로, 연극은 영화대로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한가지 일에만 전념해도 될까 말까였는데 두가지 일을 욕심냈으니 아예 처음부터 틀린 생각이었다.
개봉뒤의 영화는 말할 필요없이 대실패였다.
결국 『육체는 슬프다』는 나의 첫 영화연출이면서도 마지막연출이 됐다.
그즈음 정국은 4·19학생혁명에 이어 5·16 군사혁명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격랑의 시대를 맞게됐다.
따라서 연극뿐 아니라 모든 분야가 격랑의 시대에 휩쓸려 안정되지 못했다.
더군다나 연극은 절정기의 영화로 1년에 1편 정도 공연이 고작, 한동안 침체기에 빠져들었다.
1961년까지 「신협」이 공연한 작품수는 모두 42편. 「신협」의 전신인 「날협」이 공연했던 18편을 합치면 60편이 된다. 「극협」이 탄생됐던 47년부터 61년까지 평균 1년에 3편골. 그러나 전성기엔 1년에 7편(52년) 6편(57년)까지 공연했다. 물론 위의 숫자는 순전히 신작 공연횟수이며 같은 작품으로 재상연한 공연횟수까지를 더하면 이 숫자는 거의 2배로 늘어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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