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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2400)|극단「신협」(제61화)|피난시절연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1952년8월 「신협」에선 「쉴러」원작의 『월리엄·텔』을 공연했다. 『월리엄·텔』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5시간 가까운 장막극에다 등장인물이 50여명이나 되는 대작이다. 「신협」에선 압축을 해서 3시간으로 줄였다. 그러나 등장인원만은 크게 줄일 수가 없어 20여명의 연기자들이 모두 2∼3가지 역을 맡아 서둘러 의상을 갈아입고, 번갈아 가며 무대에 나서야 했다. 나도 연출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3가지 역을 맡아 각각 다른일을 했어야만 했다.
이 연극의 「클라이맥스」는「멜」이 자기아들의 머리위에 놓인 사과를 명중시키는 장면이다. 그러나 연극에서는 이 장면을 보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트릭」을 써야하는데 이부 문에 대해 원작가가 원작에 이미 연출을 해놓았다.
아들을 멀찍이 새워놓고 총독은 호통을 친다. 『빨리 활을 쏘아라. 왜 쏘지 않느냐』고 그러면 군중들이 우루루 총독에게로 달려가『총독각하 그것은 너무 잔인한 일입니다. 그것만은 하지 않게 해 주소서』하고 빈다. 이때 대부분의 관객들은 자연 총독에게 시선이 몰리기 마련. 그 순간 한 관객이 갑자기 큰소리를 지른다.
『야! 맞혔다. 사과를 꿰뚫었다.』
그러면 어느새 아들의 머리위 사과는 정통으로 화살을 맞은채 덩그러니 놓여져 있다. 활 쏘는 장면을 이렇게 슬쩍 「카무플라지」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누가 연출을 해도 비슷한 수법을 쓰게 마련이지만 『원작자는 연극인 출신이라 상당히 치밀하게 이 장면읕 미리 연출해놓았다.
그런데 한번은 소품 담당「스태프」의 실수로 화살이 수평으로 되질 않고 화살끝이 하늘로 기우뚱게 된적이 있었다.
사과끝에 실을 매달아 조종하게 됐는데 이 친구가 졸다가 독촉하는 통에 화살을 끝 방향을 엉뚱하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도관객들은 이 연극을 감명깊게 보았으며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나는 그뒤(1955년3월)미국무성초청으로 미국여행을 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일본엘 들렸더니 마침 일본 「신협」 에서 『월리엄·텔』을 공연하고 있었다. 일본의 유명한 연출가「무라야마·도모요시」(촌산지의)의 연출작품이라 관심을 갖고 일부러 구경을 갔었다.
당시 가장 화려했던 일본 산업경제신문사 회관에서 공연된 이 작품은 거의 5시간이나 되는 긴 연극이었다.
그러나 연극이 후반에 들면서 관객의 절반이 지루함을 이기지 못해 빠져나가 버렸다. 그것뿐 아니라 아들 머리 위의 사과를 쏘는 장면에 총독이 말을 타고 들어오는데 인조말이 기우뚱거려 관객들이 모두 까르르 웃고 말았다. 한참 긴박해야할「클라이맥스」장면에 느닷없는 웃음바다로 연극은 그만 희극이 되고 말았다.
여기에 비해 피난지에서의 우리는 조명·시설의 미비, 그리고 겹치기 출연등 모든 빈곤한 상황에서 나마 『윌리엄·텔』의 진면목을 손상시키지 않고 잘보였다고 자부하게 됐다.
1951년 후반부터 52년 말까지가 피난살이 연극무대의 최고절정기로 「신협」은 황금시대를 구가했다.
「세익스피어」의 전통 고전에서 불이 붙은「신협」은 그뒤「사르트르」의 「붉은 장갑」, 「몰리에르」의 『수전노』, 「실러」의 『월리엄·텔』 등 찬란한 「레퍼터리」를 연속으로 공연했다.
지금도 이런 대작들은 소화가 벅찬감이 있는데 당시 피난지에서의 세계적 명작을 잇달아 무대에 올릴수 있는 것은 경이적인 일이었다.
『윌리엄·텔』에 이어 공연된 작품이 유치진 원작의 『처용의 노래』였다. 부산에 있던 유선생이 신작이 한편 마련되었다고 보내온 작품이었다.
신화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연극으로 이 극에선 노래와 춤을 많이 곁들인 이색작품이었다.
지금까지 유선생 연극에서 강하게 돋보이던 「리얼리즘」을 배제, 새로운 경향을 보인 극으로 현실을 떠난 환상적인 세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 연극의 작곡을 당시 무명작곡가였던 윤이상 (현재 재독)이 말았는데 작곡이 연극의 성패를 크게 좌우함에도 불구하고 윤이상이 작곡을 엉망으로 해서 연극을 크게 망치고 말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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