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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2398)|극단"신협"|최은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1952년3월, 부산에 있던 유선생이 대구로 와 연출을 한 작품이 「세익스피어」원작의 「오델로』였다.
「오델로」역을 김동원, 「이야고」역을 필자가 맡았는데 오랜만에 세사람이 「콤비」를 이룬 연극이었다.
유선생의 박진감있는 연출과 김동원과 필자의 조화를 이룬 호흡으로 연극은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오델로』 공연중 2가지 잊지못할것이 있다. 하나는 천성적인 악인인 「이야고」의 성격을 무대에서 어떻게 구현하느냐하는 것이었다. 「이야고」는 동기가 없는 악인으로 남을 모략증상하고 아첨하는 인물이 있다. 이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걱정이었다. 20여일 동안 연습했는데도 감이 잡히질 않아 유선생에게 의논했더니 유선생도 『글쎄, 그것 어려운 노릇인데』하고 딱 부러지는 대답을 못하면서 『더 연구해보자』고만 했다.
혼자 고심하다가 한가지 생각이 떠오른 것이 구체적인 동작으로 표현해보자는 것이었다. 「이야고」는「오델로」에게 충성하는 군인이었는데 「오델로」 면전에서만 깍듯이 부동자세로 충성을 다하는채 하다가 「오델로」가 시선을 딴데로 돌리기만하면 자세를 흩트리고 비꼬는 시늉을 하기로 했다. 이런 표리부동하는 행동이 실감있게 들어맞아 그 역을 성공으로 해낼수 있었다. 역시 연기자가 자기역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해야 구체적인 수확을 가져올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당시 주위의 평도 이 역이 대단히 호소력이 있는 좁은 연기였다고 호평했다.
또 하나는 관객으로 들어온 한꼬마의 장난으로 곤욕을 치른것이었다.
그때 극장에 손님이 어떻게나 밀려들었는지 관객들이 무대위에까지 올라와 구경들을 했다. 그래서 연기자들이 연기하는 공간이 퍽 좁아졌다. 한창 연기에 몰두하고 있는데 오른쪽 뺨에 갑자기 무언가 꾹 찌르는 듯한 통증이 왔다.
처음 한두번은 그대로참고 지냈는데 계속해서 무언가가 날아와 뺨을 찔렀다. 흘끔 곁눈질을해 보니 웬 꼬마녀석이 고무줄 새총으로 나를 향해 쏘고있었다.
나는 연극을 중단시켰다. 내 연기 생활중 연극을 중단시키기는 『포기와베스』때와 이번으로 두 번째였다. 무대감독에게 이야기를 해 그 꼬마를 쫓아냈는데 그 꼬마얘기인즉 『연극중의 「이야고」가 하두 미워서 새총질을 했다』 는것.
말하자면 그 꼬마는 연극에 몰입해 분장한 배우를 실제의 「이야고」로 착각, 자기 나름대로 골탕을 먹인것이다.
그러나 아파서 견딜수 없었던것은 「이야고」가 아니고 「이야고」로 분한 배우 이해랑이었으니 딱할수 밖에-.
연극 『오델로』엔 최은희가 출연했다. 최은희는 6·25때 납치, 생명을 걸고 탈출했으며 1·4후퇴때는 부산으로 피난, 부산서 생활하고 있었다. 「신협」이 부산공연을 가니까 친척이 경영한다는 다방에서 일을 보고있었다. 납치·탈출때의 충격때문인지 부산서 본 최은희는 옛날의 최은희가 아니었다. 뺨을 붉히던 수줍음도 가셔지고 스스럼없이 술과 담배를 피우곤 했다.
『여기서 이렇게 지내서 되겠느냐. 연극을 하자』고 종용해 「신협」에 가담했다. 최은희는 외모와 체격은 배우로서의 좋은 자질을 갖추었으나 무대배우로서는 연기력이 약했다.
특히 성대가 약해 대사를 하는데 아름답지가 못하고 무리하게 들렸다.
가성이 나오니 전달이 제대로 안되고 부족한 전달을 동작으로 보완하자니 자연 연기가 거칠어졌다. 설명적인 연기로 연극에선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 없었다.
그뒤 최은희는 신상옥이『코리아』 라는 영화를 제작할때 극단을 떠나 영화로 전향했다.
『오델로』 뒤를 이은 것이「프랑스」·작가 「몰리에프」의 대표적 희극『수전노』였다.
내가 주인공인 수전노 영감역을 했고 이광내의 연출이었는데 이광내의 개성있는 「코믹」 한 연출로 이 연극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희극특유의 엎치락 뒤치작하는 장면도 잘 살려, 피난살이의 찌든 생활을 잊고 오랜만에 마음껏 웃게 한 연극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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