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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8)극단「신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연기자에게 있어서 연습은 생명이다. 아무리 천부의 재능을 지닌 배우라 하더라도 피나는 연습 없이는 명배우가 될 수 없다.
필자가 국회에 있을 때 김종필전총리와 사석에서 이런 얘기를 주고 받았던 일이 있다.
김종필씨는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대중 앞에 설 기회가 많은 노련한 정치가라 하더라도 무대에 오르면 흥분되고 떨리며, 또 「텔리비전」에 출연하였을 때 「카메라」가 작동하는 빨간 불이 켜지면 그만 눈앞이 어두워지는데 배우는 어떻게 해서 태연할 수 있느냐-』하는 것이었다.
나는 웃음을 지으며 곧 이렇게 대답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배우는 피곤할 정도로 거듭된 연습을 했기 때문입니다. 김종필씨는 『아하. 정말 그렇겠군 하고 함께 웃음을 지었지만, 배우에게 있어서의 피나는 연습은 모든 것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요소다.
또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9대 국회 때였다.
여의도로 옮긴 직후, 같은 유정회의 한 젊은 의원이 단상 발언을 했다. 그 의원은 연설을 멋있게 하려고 다양한 「제스처」를 했다. 그런데 이것이 여간 어색하지가 않았다.
이것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에 조금도 보탬을 주지 못했으며 오히려「체스처」가 방해를 해 역효과를 가져봤다. 나는 속으로 『저이가 배우라 치면 아주 졸렬한 낙제배우로구나』 하고 생각했고, 곧 이어 『연습을 안했기 때문이야. 연습을 했더라면 「제스처」의 취사선택을 함 수 있었을 터인데-.』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연극의 매력은 대중에게 공감과 감동을 주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국회에 나가게 되어 첫 등원하던 날이다. 한 야당의원의 발언이 있었는데, 그 야당의원의 발언이 얼마나 심각하였던지 나는 우리 나라가 지금 큰 위기에 빠져 풍전등화 같은 상황의 위급함을 느꼈다. 그래서 그 야당의원의 발언을 듣는 동안 줄곧 불안감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국회가 끝나 밖으로 나오니 밖의 세상은 여전히 눈부시게 밝고, 평화스럽고 시민들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말하자면 야당의원의 발언을 듣는 순간 나는 그의 감정에 동화되어버린 것이다.
밖의 필요한 분위기를 보고야 나는 안심을 하고 『야, 정치란 연극과 흡사한 데가 있구나』 하고 웃었던 것이다.
이것은 『뇌우』 공연때 「클라이맥스」의 비바람을 보고 우산 걱정을 하던 관객들의 착각과 같은 현상이었다.
국립극장장으로 취임한 유치진 선생은 극장운영을 멋있게 했다. 그 중의 한가지 예. 2층은 특별석으로 해 아주 호화스럽게 꾸몄다. 의자의 폭도 넓혔고 좌석도 푹신푹신하게 만들었다.
유선생의 생각대로 국립극장2층은 고급 사교장 구실을 했으며, 또 선남선너들의 맞선보는 장소로도 이용됐었다. 특별석으로 꾸몄으니 요금도 더 비쌌지만 더 비쌌지만 입장권 매진은 늘 2층 특별석이 먼저 됐었다.
연극의 꽃이 피려는 즈음 6·25사변이 터졌다. 6·25사변은 우리 나라를 파괴시킨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막 만개를 앞둔 연극의 꽃봉오리룰 무참히 짓밟아버린 비극이었다. 그때 6·25가 없었더라면 우리 나라의 연극은 새로운 각도에서 좀더 큰 발전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6·25가 터진 것은 『뇌우』 연이 끝난 며칠 뒤였다. 처음 10일간 공연이 끝나고 관객의 「앙코르」 요청이 있었으나 미리 잡힌 『만리장성』 이란 창극공연 일정이 있어서 5일간 쉬었다가 다시 5일간 연장공연이 있었다.
5일간 공연이 끝난 뒤엔 다음「프로」로 『인어공주』 란 「발레」가 있어서 공연 중이었는데 6·25는 그 「발레」공연 중 터졌다.
일요일, 극장에 출근해 「발레」를 구경하고 있는데 이상한 안내방송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모든 국군은 즉시 소속부대로 귀대하라』는 것이었다. 똑같은 내용이 거듭 방송되었는데, 이것이 북괴의 대규모의 남침 때문이리라곤 아무도 예상못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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