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종횡|성병욱<본사 논설위원> <3>|앞당겨사는 인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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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부동산 투기현상은 한국에만 있는게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비록 크지만 미국에도 있다.
「캘리포니아」등 서부 제주의 부동산 「붐」은 작년과 재작년 사이에 최고조에 달했었다. 연률 20%정도씩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
약간 부동산 열기가 수그러들었다고 하는 올해에도 지난 9윌까지 연률 약15%의 오름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전반적인 물가상승률의 배에 이르는 것으로 적어도 서부 제주에서는 주식 투자보다도 집을 사두는 게 유리하다는 것이 오래전부터 상식처럼 되어 있다.
올들어 부동산 경기가 각광을 받는 곳은 서부쪽 보다도 「선·벨트」 라고 불리는 남부쪽이다. 이곳에는 이주자들이 몰려들고 부동산 가격이 급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부동산 소유에 대한 제동은 부동산 소유자에게 부과하는 세금. 고정자산세란 명목으로 집과 토지세 외에 교육세·수리세·해충구제세등까지 포함시켜 상당한 액수에 이른다. 이러한 세금에 대한 부동산 소유자의 반발이 바로 얼마전 주민투표로 통과된 「컬리포니아」의 「프러포지션」 13이다.
미국인들에게 있어 내집 마련은 살집을 마련한다는 뜻보다는 재산 가치의 보존 내지는 증식이라는 투자 의식이 더 강하다고 한다.
따라서 동부의 농가나 억만장자를 제외하곤 대부분이 판다는 전제로 집을 산다. 자연히 자기 가족이 살기에 적합한 집보다는 잘 팔릴 수 있는 집을 선택하는 경향이다.
예컨대 필요가 없어도 침실은 셋 이상이어야 하고 목욕탕은 둘 이상이어야 한다는 식이다.
집을 지을 때도 개성있는 실제보다는 일반적으로 잘 팔릴 듯 한 실제를 고른다. 미국의 주택이 대개 획일적이고 비개성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집을 산다고 해도 목돈을 내는 게 아니다. 20%정도의 착수금만 내고 나머지는 은행에서 빌린 뒤 25∼30년동안 월부로 갚는다.
말하자면 집을 샀다고 해도 법적으로는 제것이지만 사실은 은행의 소유인 셈이다. 그렇게 보면 대부분의 미국 주택이 개인 소유가 아니라 은행 소유라 할 수 있다.
비단 집만이 아니다. 집 앞에 세워둔 멋진 새 자동차도 월부니까 은행의 소유물이다.
자동차의 경우는 대개 10%이상의 착수금만을 내고 3년간 월부로 갚게 되어 있다.
나쁘게 보면 미국의 생활이란 속 빈 강정같은 가불 인생인 것도 같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를 그렇게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긍정적인 요소가 더 많다.
은행 덕분에 미국 사람들은 일찍부터 풍요한 생활이 가능한 것이다.
제집 하나 마련하자고 10년, 20년씩 셋방을 전전하면서 돈을 모으는 인생과 처음부터 멋진 집에 살면서 돈을 갚아 가는 인생과 어느 쪽이 더 현명한 인생일까.
어차피 인생은 유한한데 완전 제집은 아니더라도 제집같이 쓰면서 인생의 황금기를 구질구질하지 않게 사는 것도 하나의 지혜가 아닐까.
아뭏든 우리와는 인생을 사는 방식이 전혀 다르다.
인색하게 말하면 가불 인생이지만 후하게 보면 인생을 앞당겨 충실한 삶을 산다고도 볼 수 있겠다.
사고방식이 이렇기 때문에 설혹 목돈으로 집이나 차를 살 능력이 있더라도 착수금만 내고 나머지 돈은 다른 유리한 곳에 투자하려 든다는 것이다.
적은 돈을 최대한으로 크게 활용해 생활과 사업을 확장해 가려는 인생관이 몸에 배었다고나 할까.

<로스앤젤레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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