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도하의 「넥타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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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남자의 목에 무슨 천(포)을 두르기 시작한 것은 고대 「로마」시대부터라고 한다. 제국의 병사들은 방한을 위해 「포칼레」라는 것을 목에 걸쳤었다.
그러나 복식사상 「넥타이」의 효시로는 17세기후반의 「크라바트」를 꼽는다. 「프랑스」의 병사들이 보자기 모양의 천으로 목을 두 차례 감고 나서, 질끈 동여매어 앞으로 늘어뜨렸다. 궁정의 신사들이 이 모양을 보고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루이」14세도 그것이 좋아 보였던지 본을 떴다고 한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나면서 복식에도 변화가 왔다. 「나폴레옹」1세 당시 「프랑스」의 신사들은 「스카프」로 목을 친친 감고 끝에 매듭을 지었다.
오늘의 「넥타이」모양은 19세기이후에 출현했다. 원래는 마부가 자신의 목에 두른 「스카프」가 거추장스러워 그것을 조끼 속으로. 여며 넣은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우선 영국의 신사들은 경마장에 나타날 때 그런 맵시를 하고 있었다. 경마장의 이름을 따서 「아스코트·타이」라고 불렀다.
이런 「타이」를 영어로는 「포·인·핸드」라고도 한다. 목 아래로 늘어지는 「넥타이」 의 길이가 손바닥의 4배쯤인 것에서 생긴 이름이다.
이 무더위 속에 하필 「넥타이」이야기를 하는 것은 공연히 더위를 더해줄 뿐이다. 사실 서울의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 그래도 「넥타이」를 맨 신사들이 적지 않다.
「에너지」파동이 있었던 1974년 미국에선 「넥타이」를 매자는 운동이 잠시 있었다. 한겨울의 「넥타이」는 섭씨4도쯤의 추위를 덜어준다는 것이다. 한여름은 필경 그만한 더위를 더해주는 셈이다.
요즘은 「에어컨디션·시스팀」이 웬만한 사무실엔 다 있지만 혹시「넥타이」라도 끄르고 있으면 「쿨러」의 혹사도 한결 덜어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나라에 「넥타이」가 처음 등장한 것은 이승만 화백(작고)의 『풍류 세시기』를 보면 구한말께였다. 그 당시 예식과장이던 고희성, 그리고 영국과 미국에서 유학한 몇몇 양풍 인사들이 「넥타이」의 선구자(?)들이라고 한다.
한 여름에도 그런 「넥타이」는 이들 신사의 목을 떠나지 않았는데, 바람에 날리는 멋을 내기 위해 일부러 「넥타이」를 어깨에 올려놓고 「핀」을 꼽는 유행도 있었다고 한다.
어제 서울의 기온은 36.1도(C). 32년만의 일이라고는 하지만 옷을 벗어도 그런 더위에선 몸둘 바를 모르겠다.
우리 나라에서 최고의 극 기온을 보여준 것은 1942년8월13일, 경주의 43.5도였다. 연평균30도 이상의 일수가 가장 많은 도시는 대구로 52일간. 그 다음이 전주의 49일간. 서울은 세 번째로 39일간.
그러나 8월 초순을 고비로 더위는 기세를 잃는다. 요즘은 그 막바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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