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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판 와우아파트 만든 '14분에 집 한 채' 김일성 교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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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평양도 큰 슬픔에 잠겼습니다. 평천구역 신축 아파트가 무너진 참사의 충격파 때문입니다. 북한 당국은 현장접근을 차단했고, 구체적인 사상자 규모도 밝히지 않았죠. 하지만 23층 고층 아파트인 데다 92가구가 입주해 많게는 수백 명 규모의 인명피해가 우려된다는 우리 정보당국의 판단입니다. 사고 발생 나흘 만인 17일 현장에서 사고 책임자들이 유가족과 주민에게 사죄하는 모임이 열렸습니다.

 행사장을 빼곡히 메운 수백 명 주민 중에는 몸을 추스르지 못하고 오열하는 장면도 나타납니다. 관영매체가 아닌 평양 주재 외신인 AP통신이 전송한 몇 장의 사진을 통해 드러난 겁니다. 당국이 사과를 하겠다면서, 가족을 잃어 경황없을 유족까지 줄 세우는 퍼포먼스를 벌인 건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민을 압도하는 관(官)의 횡포에 말문이 막힙니다.

평양 대성산종합병원을 방문한 김정은과 부인 이설주. 방문객용 의료가운을 걸치고 있다. [노동신문]

 이번 사고는 ‘평양판 와우아파트’로 부를 만합니다. 1970년 4월 8일 새벽 6시35분 한꺼번에 붕괴해 33명 목숨을 앗아간 서울 마포 시민아파트와 닮은꼴이기 때문입니다. 석간으로 발행된 중앙일보 당시 지면을 찾아보니 ‘5층 시민아파트 倒壞(도괴)’란 제목의 1면 머리기사에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잔해가 드러납니다. 2년 걸려야 할 공사를 불과 6개월 만에 준공했다고 하니 놀랍습니다. 취재기자는 “붕괴현장에서 콘크리트가 아닌 시멘트와 모래 먼지가 일었다”고 부실공사를 지적합니다. 겨울철 무리한 공사로 이듬해 봄 무너져내린 패턴은 평양 아파트와 유사합니다. 한국사회가 44년 전에 겪은 근대화의 장벽을 북한은 이제 넘으려 하는 듯합니다.

 사실 북한은 김일성 시기부터 부실공사와 전쟁을 치렀습니다. 변천을 거듭했지만 ‘속도전’으로 이름 붙인 노력경쟁운동 때문이죠. 기원은 ‘천리마운동’입니다. 북한은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평양 복구에 집중했고, 58년에는 ‘평양속도’를 제시합니다. 북한 문헌은 그 시기 7000세대분 자재와 자금·노력으로 2만여 세대 살림집을 건설하는 ‘기적적 성과’를 이뤘다고 선전합니다. “14분에 살림집 한 세대를 건설했다”는 주장입니다. 같은 자재·장비로 세 배 가까운 건축을 했다는 건 부실공사를 벌였다는 고백과 마찬가지입니다.

 노동신문 53년 11월 21일자에는 “새로 지은 주택이 기울어져 벽을 기둥으로 받치고, 복구된 철도청사 지붕이 내려앉았으며, 신설된 중학교나 주택 등이 비바람에 무너지는 일이 다반사”라는 대목이 등장합니다.

 김일성은 62년 연설에서 이런 ‘날림식 공사’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했습니다. 하지만 평양속도는 천리마운동 등과 맞물리며 물량 위주로 치닫습니다. 양과 질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취지가 공염불이 된 거죠. 김정일 시대 들어서는 ‘희천속도’가, 김정은 집권 후엔 ‘마식령속도’가 자리했습니다.

 그런데 평양 고층아파트 붕괴를 비판하는 기사를 쓰려니 꺼림칙한 구석이 있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바로 세월호 침몰이란 비극 때문입니다. 남녘을 휘감은 세월호의 아픔에다 북녘땅마저 버거운 상황이 닥쳤습니다. 이런 마당에 북한의 부조리와 안전불감증을 타박하는 게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하는 걱정입니다.

 정부도 고민이었던 모양입니다. 대북 정보부처는 13일 오후 평양에서 사고가 난 직후 첩보를 입수했고, 북한 동향을 주시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언론에 공개하는 건 부담스러웠다는 게 한 관계자의 귀띔입니다. ‘세월호 참사를 물타기 하려 한다’는 등의 비판여론이 나온다는 우려죠. 북한이 닷새 만인 18일 오전 6시27분 중앙통신으로 사고를 보도하고 난 뒤에야 통일부는 입을 열었습니다. 일요일 오전인데도 정부가 긴박하게 움직인 건 미리 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북한도 부담스럽긴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세월호 침몰을 기화로 북한은 한 달 넘게 반정부 선동의 고삐를 조여왔습니다. “세월호와 함께 남조선이 침몰했다”는 식이죠. 하지만 아파트 붕괴 사고가 터지자 관영 선전매체도 주춤하는 모양새입니다. 아마 노동당 대남전략가들도 이런 비방이 먹히지 않는다고 판단한 듯합니다. “평양 한복판에서 참사가 벌어졌는데 남조선 탓할 게 뭐 있는가”라는 역풍도 우려했겠죠. 공교롭게도 19일자 노동신문엔 세월호 참사 소식이 빠졌습니다.

 한 가지 꼭 짚을 건 김정은의 행보입니다. 그는 부인 이설주와 함께 평양 대성산종합병원을 방문한 것으로 노동신문이 19일 전했습니다. 군인과 그 가족을 치료하는 전문병원인 이곳 병실에서 환자들과 파안대소하는 모습입니다. 참사 이튿날 축구경기를 관람한 데 이은 공개활동이죠. 이런 모습은 부적절합니다. 집무실에서 불과 2㎞ 정도 떨어진 곳에서 참사가 났는데 현장방문이나 위로메시지 없이 웃음을 보였다는 측면에서입니다. 자신은 이번 사태에 책임이 없다는 걸 시위하려는 듯합니다. 이런 태도로 미뤄 볼 때 김정은은 건설공사 공기(工期)단축을 압박하는 마식령속도를 포기하지 않을 기세입니다. 참사에도 불구하고 건설부문 최측근인 마원춘 노동당 부부장에게 국방위 설계국장이란 새 직함과 군 중장(별 두 개로 우리의 소장에 해당) 계급까지 부여한 것도 그렇습니다. 평양건설건재대학 출신인 마원춘은 마식령스키장과 평양 문수물놀이장·능라인민유원지, 원산의 송도원 국제소년단야영소 같은 건설프로젝트를 추진해온 핵심입니다.

 마식령속도를 업그레이드하려는 조짐까지 감지됩니다. 노동신문은 지난 1일 ‘조선속도’란 용어를 등장시켰습니다. 이제 김정은을 막아나설 사람은 평양 권력 내부에 없습니다. 김정은은 체제 우상화물과 특권층을 위한 대규모 건설공사에 다시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국제사회와 소통을 단절한 채 그가 쌓아올리려는 바벨탑은 어떤 모습일까요. 평양의 흉물은 아버지 김정일이 87년 착공했다가 경제난으로 완공 못한 105층 유경호텔 하나로 족한데 말이죠. 주체사상과 선군이데올로기의 프레임에 갇힌 김정은이 브레이크 풀린 폭주기관차처럼 내달리고 있습니다. 김정은식 속도전의 종착역이 궁금해집니다.

이영종 외교안보팀장

사진설명 지난해 12월 완공된 강원도 마식령스키장 건설 모습. 안전장구를 갖추지 못한 채 군 병력이 작업을 벌이는 곳곳에 속도전 선전판이 보인다.[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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