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대중화』가 상업주의가|강용준 선배의 「70년대 작가론」에 한마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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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근년에 이르러, 이른바 70년대 작가군의 작품 경향이나 그 지향하는 바를 두고 부분적인 논란이 있어 왔다. 그들은 그 때 마다, 혹은 터무니없이 옹호되기도 했으며 때로는 가차없이 난도질당하기도 했었다.
그 비판의 칼날이 어떤 모습으로 내려지든 간에 그 바탕은 이 시대 문학을 염려하고 옹위 하려는 애정을 근거로 하고 있다는 데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 것은 수십년을 두고 쌓이고 쌓인 낙엽이 유기질의 지층을 이루듯이 70년대 문학도 수많은 인고 속에서 자라 온 우리 문학의 토양 위에서 움트고 자라 왔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단자들일 수도 없고 돌연변이의 「육손이」도 아니다.
보다 양심적인 견해에서 볼 때 70년대 작가군이 이 시대 문학의 선도역 내지는 주역은 더욱 아니다. 다만 그들은 특징지을 수 있는 뭉뚱그려진 모습이 있다면 한 시대의 아픈 상처가 무엇인가를 비교적 공통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며 엇비슷한 연대에 출발한 작가 「그룹」이라는 것일 것이다. 그러므로 한가지 명료한 사실은 그들도 고생고생으로 살아가는 다른 선배 작가들처럼 자신들의 목숨이 다할 때까지 작품을 쓰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운명을 지닌 그런 순진스러움을 마땅히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70년대 작가군이 사시되고 있는 부정적인 측면은 일부가 상업주의 내지는 인기라는 것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점일게다.
그러면 이 상업주의란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걸레같이 축축 처지고 구린내 나는 작품을 신문·잡지에 팔아 넘기는 데 급급하다는 뜻인가, 아니면 독자들에게 갖가지 교태를 부려서 바가지를 씌우는 우롱을 일삼는다는 뜻인가, 아니면 그 순수 지고한 문학 고유의 작업엔 외면하고 씹어서 달콤할 뿐인 솜사탕만을 양산하고 있단 말인가. 물론 그들 뿐만은 아니지만 그들은 대부분이 고료로써 호구지책을 마련해 나갈 수밖에 없는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다.
때로는 금전이라는 것에 얄밉게 굴 수도 있으며 심리적인 경쟁 의식도 작용되리라 믿는다. 그걸 가차없이 지탄해 버리지는 말자. 하지만 그들이 문학작품 그 자체에 대한 반성을 게을리 하거나 인색하다든지, 문학 그 자체에 도색적인 오도만을 일삼는다고 봐선 안될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어떤 작가가 그 자신의 인기에만 급급해서 그 작업에 탐닉 될 때 그의 작가적 생명에 어떤 상처가 오리라는 것은 정신박약아가 아닌 이상 예견하게 되리라.
그들에게 긍정적인 측면이 허용된다면 한마디로 문학 독서 인구의 개발 확산에 70년대 작가군이 근년에 이룩한 기여나 역할에 대해서 외면해 버릴 수는 없다. 문학의 대중화라는 문제가 재음미되어야 할 까닭도 여기에 있다. 신문소설은 통속이며 문예지의 그것은 순수라는 일도 양단의 통념에도 문제는 있다고 본다. 근본적으로 문학의 대중화가 금기시되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렇잖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많은 문학 독자가 생겨나고 있는 지금의 현상에 대해서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독자들이 우리 문학으로 시선을 돌리게 된 이유가 70년대 작가군의 역할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60년대 이후의 작가군이 그 잠재적 가능성에 휘발성을 부여했던 것이라면 망발이 될까.
70년대 작가군이 지닌 어떤 바보스런 측면이 있다면, 그리고 문학이 오도되고 있는 기미가 있다면 그것은 양심적인 대세에 의해서 도태되거나 교정되어 갈 것임에 틀림없다.
남는 것이 문학이지 오늘 당장 씹히기 좋은 것이 문학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가지 오해 없기 바라는 것은 필자가 무슨 70년대 작가군의 대변 자연하는 것도 아니며 선배들의 글에 대한 반론 따위는 절대로 아니라는 것이다. 【김주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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