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조치 아닌 정치적 도발|북괴의「해상군사경계선」설정의 저의(이한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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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현행 국제법 테두리 안에서는 해상군사 경계선이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현재「유엔」 해양법회의가 제3차 회의 제6회기까지 진행됐고 비공식 단일교섭 초안이나 그 개정판이 나왔으며 이번 제6회기에서 새로운 초안이 나올 예정이지만 그 어느 것에도 북괴가 선포했다는 해상군사 경계선 같은 것은 들어있지 않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전시라는 이유로 설정했듯이 과거에 해상방위 수역 명목으로 영해를 확장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그것이 국제법상 인정돼 본 일은 없다.
국제법상 어떤 주권국가가 영해 또는 기타 수역을 선정할 때 그 효력은 국제법에 의존하는 것이 원칙이다. 어떤 국가도 마음대로 영해를 확장하거나 어떤 명목으로든 이른바 접속 수역을 선포 할 수는 없다.
1958년 영해 및 접견 수역에 관한 협약이 성립됐으나 그 접속 수역은 12해리 한도이며 또 그 12해리도 군사적 목적은 포함돼있지 않다.
오늘날 제3차 해양법회의에서 다수 국가의 승인을 받고있는 경제수역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수역안에 있어서의 자원이 문제되는 것이지 군사적인 시위를 하거나 또는 군사적 통제를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경제수역도 오늘날 하나의 세계적 추세이기는 하지만 아직 완전히 국제법으로 확정되지 않았다. 그 귀추는 제3차 해양법회의의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고 오늘날 이것이 국제법으로 결정됐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물론 미국 소련이 2백 해리 전관수역을 설정했고 일본도 이것을 선포했으나 한국 쪽에는 적용을 유보하고있다.
북괴가 갑자기 경제수역을 선포하고 다시 동해에 50해리, 서해에는 경제수역의 경계선인 2백 해리의 군사경계선을 설정했으나 이는 국제법상 명백한 불법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따라서 이는 법적 행동이 아니라 하나의 정치적 행동이고 또 우리 한국을 겨냥한 모종의 도발행동이 아닌가 추측된다.
북괴가 겨냥하는 바는 바로 서해5도를 12해리 영해와 2백 해리 경제 수역안에 포함시키고 우리의 해상통로와 민간어업을 방해함으로써 휴전협정에 대한 도발을 시도하려는 저의가 있는 것 같다.
휴전이래 20여년 간 준수돼온 서해5도에의 해상교통을 방해한다면 이것은 휴전협정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다. 따라서 북괴가 설사 12해리 영해와 2백 해리 경제수역을 설정 했다해도 이와 같은 휴전협정위반만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우리헌법상으로 북괴는 무에 지나지 않으나 실사 이것을 어떤 정치적 실체로 인정한다 해도 일반국제법상 원칙은 존중해야 마땅하다.
우리측 남북조절위는 북괴의 경제수역 선포에서 오는 분규를 미리 막기 위해 북괴와 회담하기를 제의했으나 북괴는 예상대로 이를 거부했다.
여기에 다시 국제법상 존재치도 않는 군사경계선을 설정 한 것은 휴전협정을 고의로 위반하면서 우리에게 도발을 자행하려는 예비적 조치라고 볼 수밖에 없다.
휴전협정을 이행시키는 어떠한 집행적 기관이나 국제법을 준행시키는 어떠한 강제장치가 없는 국제사회에서 불법 무법에 대한 대책은 역시 실력으로써 대하는 도리밖에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여기에 우리 정부의 단호한 결의와 대책이 요망되는 바이다.

<필자=서울대법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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