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쿠데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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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최근 일련의 불길한 징조들을 보여주던 태국엔 끝내「쿠데타」가 일어나고 말았다. 민정 3년만에 다시 맞은 군정이다. 「쿠데타」의 향방은 아직 분간하기 어렵다.
그러나 문민위주의 부드러운 민주정치 시대는 일단 막이 내린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최근에 있었던 불길한 징조들이란 이른바 구세력들의 심상찮은 움직임들이었다.
지난 8월엔「타놈」군사정권의 실력자였던「프라파트」전 부수상이『몸이 아파 죽으러 왔다』는 명분(?)으로 대만에서 잠입했었다. 결국 좌파학생들의 아우성으로 1주일만에 다시 쫓겨나고 말았다.
한편「크리스」대장의 현역퇴역도 길조는 결코 아니었다. 작년 9월 그는 정년을 이유로 군복을 벗지 않으면 안되었다. 73년의「10월 정변」때 그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장군으로 알려졌었다.
당시 3군 최고사령관이던 그는「타놈」수상의 명령에 불복, 끝까지 군대를 출동시키지 않았었다. 군부의 일각에선 그에 대한 경원이 없지 않았다. 더구나 그는『「쿠데타」로 군부가 권력을 다시 장악해도 앞으로의 전망은 어둡다』고 평소에 공언을 해왔었다.
다른 한편 사회의 혼란도 여간 아니었다. 연율 20%가 넘는「인플레」가 서민들의 비명을 자아냈다. 농민들은 농토를 버리고 도시로 몰려들어 도시는 날로 빈민과 실업자군의 소굴이 되어 갔다. 고급관료·군장성·대화교·대지주들로 이루어진 경제구조는 오히려「타놈」시대 못지 않게 굳어져 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정치적 안정을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10월 정변 후 처음으로 치러진 작년의 총선에는 무려 42개 정당이 난립했었다. 하원에 참여한 정당만 해도 23개. 10월 정변의 주동이 되었던 학생들도 NSCT(「타일랜드」전국대학「센터」)와 VSCT(전국직업학교「센터」)로 나뉘어 좌·우의 기치를 들고 충돌이 잦았다.
태국 동북부에 은거하는 공산「게릴라」들 까지도 날로 세력을 키워가고 있었다. 태국공산당은 당원이 8천명이나 되며, 이들은 가난한 농촌지역에 뿌리를 펴고 제2의 인지사태를 꿈꾸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타놈」이 귀국한 것은 불 속에 기름을 붓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비록 승려를 자처하여 사원에 들어앉았지만, 그의 진의를 의심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쿠데타」는 이를테면 이런 상황에서 무르익은 셈이다. 정치적 후진국의 공식이 다시 한번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태국은 어쩌면 이게 마지막 정치도박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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