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마라톤 테러 1년 "우리는 여전히 서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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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마라톤 테러 1주년을 맞아 테러로 한쪽 다리를 잃고 의족을 한 JP 노든이 15일(현지시간) 의족이 필요한 어린이를 돕기 위한 자선 걷기대회에 참가해 결승선으로 가고 있다. 그의 운동화에는 ‘보스턴 스트롱(Boston Strong)’이라는 글이 쓰여 있다. [보스턴 로이터=뉴스1]

15일(현지시간) 보스턴엔 얇은 빗줄기가 내렸다. 시계가 오후 2시49분을 가리키자 사람들은 침묵으로 빠져들었다. 30초의 묵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참모들과 함께 묵념했다. 꼭 1년 전 압력솥 폭탄이 터져 피범벅 된 사람들의 비명으로 가득했던 그 자리에선 짧은 기념식이 열렸다. 시민들은 우산을 들지 않고 비를 맞았다.

 3명이 숨지고 264명이 부상당한 보스턴 마라톤 테러는 9·11 이후 미국 땅에서 벌어진 최악의 테러였다. 테러는 보스턴을 변화시켰다. 당시 관중이었던 캐티 카모나는 뉴욕타임스에 “끔찍한 비극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기쁨 대신 죄책감이 든다. 일에 스트레스를 덜 받고, 매 순간 삶에 감사하는 법을 배웠다”고 썼다. 아직 공포를 떨치지 못한 이도 적지 않다. 자원봉사자였던 토드 코언은 항상 사고를 염려하는 성격으로 변했다. “더 이상 대중을 신뢰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시민들은 서로 격려하고 응원했다. ‘보스턴은 강하다(Boston Strong)’ 구호 아래 희생자들을 돕기 위한 모금운동을 펼쳤다. 폭탄 파편에 한쪽 혹은 양쪽 다리를 잃은 사람들은 금속 의족을 끼우고 다시 일어섰다. 무릎 아래 두 다리를 모두 잃은 설레스트 코크란은 의족을 뺀 다리 위에 “여전히 서 있다”는 글귀를 적었다. 왼쪽 무릎 아래에 인공 발을 부착해야 하는 히서 애벗은 “다리는 잃었지만 마음은 더 풍요로워졌다”고 밝혔다.

 지난 1년은 보스턴엔 기적의 해였다. 테러 여파로 움츠러들었던 경기는 완전히 회복됐다. 연중 호텔 객실 점유율은 사상 최고치인 80%로 솟았고, 평균 방값도 223달러까지 올랐다. 블룸버그통신은 컴퓨터 소프트웨어 기업과 벤처 캐피털 활동이 그 어느 해보다 왕성했다고 보도했다. 보스턴 시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보스턴 레드삭스는 월드시리즈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전년도 최하위에 머물렀던 팀의 환골탈태였다.

 보스턴시는 테러 현장이었던 결승선을 말끔하게 단장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올해 마라톤대회가 21일 열린다. 참가자는 3만6000여 명. 관중은 1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조 바이든 부통령은 기념식에서 “우리는 (테러에) 대처했고, 견뎌냈고, 극복해냈다. 결승선은 (테러범이 아니라) 우리 것이다”고 말했다. 보스턴이 다시 일어섰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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