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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신저」의 자승자박|중동전 왕복외교기밀누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키신저」에게는 「기밀누설」이 그림자같이 쫓아다닌다. 1969년 백악관시절 국가안보에 관한 기밀이 잇달아 새어나가는데 당황한 「키신저」의 발상으로 생긴 것이 악명도 높은 백악관의 도청「팀」인 「연관공부대」.
「닉슨」은 바로 그 연관공들을 이용한 도청의 마수를 「워터게이트」의 민주당 본부까지 내밀었다가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최근 미국정보기관의 활동에 관한 하원정보위의 조사 보고서가 CBS방송의 「대니얼·쇼」기자에 의해 보도됐을 때 「키신저」는 그 책임을 하원정보위에 뒤집어씌우고 그런 수법은 『새로운 「매카디즘」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궁지에 몰린 하원은 누설의 「범인」을 색출하는데 필요한 경비 35만「달러」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사연을 가진 「키신저」그 사람이 이번에는 최고 기밀로 남아있어야 할 기밀문서를 스스로 누설한 혐의를 받아 큰 낭패를 당하게 되었다.
문제의 문서는 73년 제4차 중동전 때 「키신저」가 벌인 이른바 왕복외교의 내막이다.
「하버드」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있는 「에드워드·셰한」이라는 사람은 계간지 「포린· 폴리시」의 춘계호에서 그 당시 「키신저」가 「사다트」 「이집트」대통령·「아사드」 「시리아」대통령·「마이잘」 「사우디아라비아」국왕 그리고 「이스라엘」지도자들을 만나서 나눈 설득의 대화를 대화체 그대로 소상하게 실었다.
이래가지고서야 미국지도자들하고 안심하고 협상을 벌일 수 있겠는가고 외국지도자들이 이맛살을 찌푸릴만하다.
문제의 기사는 「키신저」의 공적을 극찬하고 있다. 73년의 왕복외교에서 「키신저」의 천재가 극치에 이르렀다고 「셰한」은 평가했다. 이런 기사를 보고 국무성을 출입하는 불여우 같은 노련한 기자들의 머리가 급속히 허전하지 않을 턱이 없다.
「닉슨」대통령의 연설문 작성 담당보좌관을 지냈고 지금은 「뉴요크·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윌리엄·사마이어」는 이 기사를 읽고 『이런 문서가「키신저」의 승낙 없이도 누설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꿈속에 산다』고 말했다.
「사마이어」는 「키신저」가 자기에게 불리한 문서가 새어나갔을 때는 『새로운 「매카니즘」이라고 펄펄 뛰었지만 자기에게 유리한 문서는 일부러 누설시킨 것이라고 단정했다.
「키신저」는 그 기사를 보고 『벼락맞은 심정』이라고 기자들에게 말했지만 그들은 어림없는 소리라는 듯이 그 말을 일소에 붙였다.
기자들은 문제의 문서누설에는 중동외교의 실패를 비판받는 「키신저」가 명예회복을 하려는 야망을 작동시킨 것이라고 믿는다.
이 사건으로 하원정보위는 얼굴을 좀 들 수 있게 됐고 CBS방송에서 정직당한 「쇼」기자의 보직전망은 밝아졌으며 내리막길을 미끄러지고 있는 「키신저」의 신용은 곤두박질의 위기에 처했다. 공정한 수사를 한다면 그 결과는 「키신저」의 직접누설 아니면 적어도 누설의「허락」을 내린 사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사파이어」기자를 비롯한 많은 기자들과 국회의원들은 믿고있다. 【워싱턴 = 김영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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