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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구자의 인간만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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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고사를 보면 위인들의 생에는 의외로 불행의 연속이다. 오히려 역경 속에서 그들은 용기를 얻고 새로운 결단들을 한다. 위인들의 훌륭한 면모는 바로 이런데서 찾아 볼 수 있다.
중국의 대역사가인 사마천의 일화가 생각난다. 한 무제 때 그는 흉노에게 항복한 이른 장군을 변호한 죄로 중형을 받았다. 한마디로 삶의 의욕을 완전히 잃었을 것이다. 하루아침에 불구가 된 그 심정은 비통·절망에 비할 바가 아니었을 것 같다.
그러나 사마천은 이런 불행 속에서 분연히 결단했다. 『선인들도 불행에 직면해서 위대한 업적을 남겼거늘, 나도 불구의 몸에 비통함을 참으며 채찍질을 해 무슨 일이든 남길 것이다.』 1백30권에 달하는 『사기』 는 바로 이런 결단의 산물이었다. 중국고대사를 서술한 책으로는 그 이상이 없다.
중국 최고의 병서로 오늘날까지도 많은 교훈을 주고 있는『병법』이란 명저를 남겨 놓은 손무(존칭은 손자라고도 함)도 두 다리가 없는 불구자였다. 공자의 제자이며 유명한 학자인 좌구명은 눈이 멀었었다. 그러나 『춘추 좌씨전』과 같은 명저를 저술했다.
인간에게 있어서 지체가 온전치 못한 것이 곧 인생의 좌절일 수는 없다. 그것은 비범한 인간에로의 전환을 가져오는 계기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일부 대학에 의해 진학의 기회가 막혔던 지체 부자유 수험생들이 인간만세를 부르게 되었다.
경쟁의 대열에서 벗어나 「특별고환」의 혜택을 받게 된 것이다.
마치 지체의, 불구가 정신의 불구인양 대열에서 제외되었던 이들에겐 더 없이 기쁜 일이다.
「특별고환」의 소식이 전해지자 농성을 벌이고 있던 수험생들은 환성을 지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자유로운 학문의 길마저 갖지 못했던 이들에게 그 이상 감격적인 일은 없을 것 같다. 어떤 학생은『남의 도움만 받는 사람이 되지 말고, 우리도 무엇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울먹였다고 한다.
사실 불구의 지체를 가진 것만도 불행한데 학문의 길마저 좁아진 것은 일종의 불행처럼 생각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당국으로선 애당초 학력에서는 자유경쟁을, 신체검사에선 특별배려를 베푸는 입시정책을 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대학의 자율이 원만하게 기능하고 있었다면 굳이 이번과 같이 외부의 지시를 기다릴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대학당국자가 대학정신에 투철할 수만 있었다면 지체부자유자도 똑 같은 인격자이며 또 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럴수록 이토록 분명한 일까지도 「지시」를 기다려야만 움직이는 우리의 대학 및 문교당국자의 옹색함이 돋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번 일은 사람을 외모나 비본질적인 속성 때문에 차별하는 일체의 사회관습에도 좋은 교훈이 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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