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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중요" 1%뿐이었는데 … 서독의 반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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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분단 시절 통일에 대한 서독 국민의 관심은 저조했다. 하지만 서독 정부는 청소년들에 대한 통일교육으로 이 딜레마를 극복하려 했다. “동·서독 통일 과정에서 보여준 서독의 청소년 통일 교육처럼 남북 통일의 준비는 미래세대인 청소년들에 대한 통일 교육에서 시작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23일 통일연구원에 따르면 서독 주민이 생각하는 정책문제를 고르는 여론조사에서 통일문제를 꼽는 비율은 1963년 31%에서 72년 1%까지 줄었다. 통일에 대한 기대 또한 66년 29%에서 76년에는 13%까지 떨어졌다. 부유한 삶을 즐기고 있는 서독 주민의 입장에서 통일 문제는 삶의 우선순위에서 점점 밀려났던 셈이다.

 하지만 서독의 지도층은 이를 방관하지 않았다. 특히 자라나는 미래세대를 위한 교육에 치중했다. 서독 정부는 1978년 11월 ‘학교 교육에서 독일 문제에 대한 지침’을 정했다. 여기에는 통일 의식 강화와 더불어 통일의 당위성이 크게 부각됐다. ‘민족적 통일을 위한 우리의 노력은 정당하다’거나 ‘동독에 있는 독일인들의 인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의 당연한 권리이며 인도주의적 의무’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 지침은 정치적 논란을 불렀다. 당시 집권당인 사회민주당에서조차 큰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교육정책을 관할하는 주정부들은 전향적인 정책을 폈다. 당시 서독의 11개 주는 다양한 정당이 집권하고 있었음에도 이 지침은 모든 주정부에서 받아들여졌다. 통일 문제에 관해선 정치적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미래 통일의 주역들에게 일관된 내용을 가르친 것이다.

정파 간의 이해관계가 갈려 북한인권법조차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는 우리 국회의 상황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미래를 위한 꾸준한 준비는 정권을 초월한 동방정책의 계승으로 이어졌고 90년 10월 독일 통일의 밑거름이 됐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89년 서독 주민의 75%가 ‘독일의 전체 민족은 자유로운 자결에 의해 독일의 통일과 자유를 완성해야 한다’는 독일기본법 내용을 포기하면 안 된다는 인식을 공유한 건 그러한 노력의 결실이었다.

 그러나 통일 준비에 대한 남한의 노력은 서독과 대비된다. 통일연구원은 “과거 서독에서 이뤄진 정파를 초월한 통일교육은 독일 통일정책에 관한 국민갈등을 완화시키는 기반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서독 사례를 참고해 통일교육의 제도적 체계를 정비하는 작업이 시급하다”며 통일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위한 종합적 시스템 구축 방안을 제시했다. 지난해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실시한 통일의식조사에 따르면 50대 이상은 62.7%가 통일이 필요하다고 대답했지만 19~29세는 40.4%가 통일의 필요성에 동의했다. 연령이 낮아질수록 통일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낮아졌다.

 김병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는 “취업·결혼 등의 문제에 직면한 젊은 세대는 아무래도 실용적인 관점에서 통일을 바라본다”며 “젊은 층의 부정적 시각을 돌파하려면 단순히 통일이 이익이 된다는 경제적인 관점을 뛰어넘어 전쟁의 위험이 줄고, 병역 의무가 획기적으로 달라지고, 대륙으로의 진출 기회가 늘어나는 등의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대를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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