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든 사람 푸대접하는 버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저는 서울변두리 농가·시내도매시장 등지에서 야채·생선·젓갈 따위를 사서 시장·노점이나 행상을 벌여 고작해야 하루 1천원 벌이를 바라보는 영세상인입니다.
저 같은 영세상인들은 먹고살기 위해 봇짐이나 함지박을 들고 다녀야하는데 지하철은 아예 타지도 못하고 버스도 한번 타려면 무진 애를 씁니다.
간혹 마음씨 좋은 안내양들을 만나면 슬쩍 타볼 수 있읍니다만 대부분의 안내양들은 저희 같은 영세상인들을 마구 밀쳐내기 때문에 함지박을 안고 나동그라지기 일쑤랍니다.
대부분 변두리지역의 일부 시내버스 종점에서는 채소밭에서 야채를 사다 파는 영세상인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 40여명씩 줄지어 기다리다가 1∼2시간만에야 겨우 차를 얻어타는 실정입니다.
버스 타기가 이렇게 힘들기 때문에 서울 남대문시장의 영세상인들은 그날 팔다 남은 야채를 한 함지박에 60원∼1백원이란 많은 돈을 주고 시장보관소에 맡기고 다니기도 합니다.
서울시내의 교통난을 잘 압니다만 제발 교통행정과 운수업에 관계하시는 분들과 시민들께서 저희들의 고충을 이해해주시고 우리들이 손쉽게 짐을 운반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주셨으면 더없이 고맙겠읍니다.

<서울 서대문구 불광동 이정순·60·야채상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