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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대기업 여신관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업「그룹」15개가 앞으로 정부의 집중적인 여신관리를 받게 되었다.
5·29조치에 따라 재무구조가 극히 불량했던 이른바 A군 기업을 주거래은행이 관리하는 것과는 달리 이 15개 「그룹」은 국민 경제적 비중이 크고 계열기업이 많은 기업으로서 정부가 직접 여신관리·재무구조 개선을 맡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국내의 주요산업을 망라하고 있는 이들 기업「그룹」에 대해 정부가 직접 금융여신을 관장하겠다는 뜻은 이들 기업을 주업종 중심으로 중점 육성하고, 방대한 규모의 여신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금융여신과 기업소유 집중 대책을 내용으로 한 5·29조치의 근본취지가 자기자본력이 취약한 계열기업의 정비와 공개를 유도하여 과도한 금융의존이라는 적폐를 일소하는데 있는 만큼 우리는 이 조치가 실효를 거두어 지금까지의 불건전한 기업풍토를 쇄신하는 계기가 될 것을 기대한다. 자기자본은 한 푼도 없이 차관이나 금융에 의존하여 기업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기적」이 한때나마 가능했던 것은 그 책임의 태반이 정부측에 돌아가야 하는 것이므로, 그간의 적폐를 불식하는데도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이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의 「관리」나 「지도」가 엄정한 경제논리에 입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과거의 기업 부실화가 대부분 그의 투자·생산과정에서 시장성·수익성이나 산업간 연관을 도외시함으로써 경제적 합리성을 일실한데 근본원인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따지고 보면, 5·29조치는 공업화의 초기단계에서 경험한 시행착오의 후유증을 뒤치다꺼리하는 작업이랄 수도 있다.
때문에 이의 시정을 위한 노력은 철저하게 경제적 합리성을 바탕으로 삼아야 함은 물론이다. 정부의 관리가 보다 합리적이려면 관리의 기준이 더욱 세분화·객관화되고 장기적인 산업구조정책과 조화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계열기업정비가 부실기업책무의 은행전가로 끝나서도 안 된다.
기업경영과 금융여신의 밀접한 관계에 비추어 정부는 여신관리 과정에서 상당한 기업에의 영향력을 갖게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영향력이 자칫하면 민간기업의 자유로운 창의성을 위축시킬 계지도 없지 않으므로 특히 신중한 운영이 필요하며 획일적인 관리보다는 개별기업의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한 단계적인 적용이 소망스러울 것이다.
정부의 이번 조치에 따라 몇 개 기업「그룹」은 이미 본격적인 정비가 추진 중에 있거니와 기업가들도 차제에 지금까지의 지나친 정부의존형 경영체제를 탈피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자본축적이 태무했던 초기와는 달리 어떤 형태로든 독립투자의 여력을 다소나마 갖게된 지금으로서는 자립경영을 추구하려는 자세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하겠다. 더욱이 일부 지각없는 기업인들로 인해 전체 기업인들의 기업윤리에 관한 논의가 특히 높아가고 있음을 볼 때 더욱 그렇다.
자본력의 뒷받침이나 경영능력도 돌보지 않고 무턱대고 경영의 다각화만을 추구하려는 일반적인 기업풍조도 고쳐져야 할 것이다.
기업의 국제화 시대에 요청되는 새로운 경영정신은 끊임없는 기술혁신을 통해 기업을 고도화함으로써 「새로운 고객을 창조」하는데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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