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국에의 대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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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인도차이나」사태 이후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는 각기의 안전과 보위를 위한 제 나름의 노력이 역력하다. 강력한 우방의 방위공약을 확인하려는가 하면 혹은 분란의 계기가 될 요인을 줄여보려 애쓰고 있다.
비단 인지의 주변국 뿐아니라 세계의 시선이 「아시아」에 쏠려, 인지 다음에 올 사태에 대해 갖가지 분석과 전망이 제기 되고 있다. 그 여러 가지 견해 가운데서 제2의 인지사태 같은 불행한 일이 한국에서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분석에 우리는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의 불안요인은 크게 보아 두 가지가 있다. 김일성 집단의 극렬한 모험주의라는 한반도의 내재적 요인과 강국의 세계전략이라는 외재적 요인이다. 이중 어느 것도 우리의 독자적인 의사만으로 그 방향을 쉽사리 바꾸기 어렵다는 사실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다고 정부와 국민이 오늘의 현상과 내일의 전망에 무비좌시만 할 수 없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헌법 제53조에 의한 박정희 대통령의 이번 긴급조치 선포는 그런 의미에서 난국에의 적극적인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 『국가안전과 공공질서 수호를 위한 긴급조치』를 선포하면서 박 대통령은 『미증유의 난국에 처해서 우리 각자가 시급히 해야할 일은 모든 국민이 한 덩어리로 총화단결하고 국론을 통일하여 국가의 안전보장을 공고히 다지기 위해 모든 국력을 기민하고도 유효하게 총 집결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흔히 시국관이라든가 안보관의 차이라는 말을 많이 써왔다. 그러나 인지사태 이후, 우리가 처한 국면이 매우 어렵다는 점에 대해서는 별 이의가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오늘의 현실이 난국임을 부정할 수 없다면 그 난국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자세와 수단이 필요한 것은 자명하다. 하물며 우방이 한국의 위국을 염려하고 누차 대한방위 공약의 준수를 다짐하고 있는 마당에선 더욱 그러하다.
오늘의 현실이 난국이라는 판단은 정치적 입장의 차이를 초월한 하나의 객관정세이기 때문에 어떤 동기건 간에, 그 난국에 대응하는 태세에는 유루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의 안보태세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 수 있겠는가 라는 방법론이 중요하며, 그 방법론의 효과적인 실천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는 그 방법론에 관하여 사실상의 논의 종결선언과도 같다. 박 대통령은 앞서의 담화에서 『안보에 관한 논의를 할 때는 이미 지났다』고 말했다. 『국론을 통일해 위국에 대처하고, 북괴의 오산을 막도록 힘을 집결하는 일만이 남았다』고 역설했다.
이번 조치는 그러므로 이 담화를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기는 방법론의 제시인 셈이다. 학생은 공부만을 해야하고, 정치인은 국력의 결집을 저해하는 반체제적 활동을 삼가야 하며, 사회적 부조리를 엄중히 척결돼야 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14개항에 걸친 긴급조치 9호를 보면 금지사항이 7개며, 그 밖에는 위반 사실의 처리·처벌규정 등이다. 금지사항은 개헌운동 금지 같이 긴급조치 1호에서 이미 규제했던 예가 있거나, 재산 해외도피 금지 같이 기존 법에 의해 다스릴 수 있는 대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긴급조치로 다시금 규제한 것은 그 만큼 이번 긴급조치가 훈시적·계도적 의미를 내포한다고 봐야한다. 특히 공무원 수뢰에 대한 처벌규정은 형식만 늘렸을 뿐이므로 새로운 것이 아닌 경고적 규정이다.
규제대상이 너무 포괄적이라든가, 위반 사실에 대한 처리·처벌 규정의 형평에 관해 여러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조치의 시행과정에서도 절차상의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긴급조치가 난국에 대처하는 태세를 다지는 선언적 성격을 띄고 있다는 점에 유의한다면 그 같은 문제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가령 금지사항인 「사실의 왜곡」에서 보더라도 「정실」의 판단이나 어디까지가 「왜곡」이냐는 해석은 매우 큰 폭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긴급조치가 『국가안전과 공공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긴급조치』인 만큼 이 조항의 목적과 정신에 부합되게 모든 규정이 해석되고 적용되어야 한다.
범상한 표현으로, 국민이 각자의 본분에 맞추어 생활한다면 국가의 안전과 공공의 질서가 흔들릴 수 없을 것이다. 또 긴급조치의 적용에 있어서도 법칙을 항상 염두에 둔다면 그 법의 타당성이나 실효성의 문제가 전면에 제기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외신은 이번 긴급조치를 사실상의 준 전시상태의 선포라고 논평하고 있다. 확실히 이 긴급조치로 우리는 새로운 질서에 직면했다. 그러나 그 질서가 위축이나 좌절의 무력한 질서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국력의 집결을 위해서는 건설적인 비판이 한계 속에서 오히려 더욱 활발하고, 경제활동은 더욱 신장되고 문화와 사회 각 분야가 모두 활기를 갖는 적극적 질서가 이룩되어야 할 것이다.
앞서 지적한 한반도의 불안 요인의 본질로 미루어 우리의 존립과 우리의 안전은 궁극적으로 우리 스스로의 책임 하에 있다. 한국이 보위돼야 한다는 우방의 지원공약도 결국 우리 스스로의 태세 여하에 따라 좌우될 수 있으며 또, 그 같은 세계 여론이나 확약을 아무리 과대 평가해도 우리 자신 이상으로 우리를 아껴 줄 수 없으리라는 것이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이다.
소절에 집착한 관념적인 논리나 근거 없는 낙관적 기대가 우리를 보위해주는 것은 아니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 직면한 오늘의 상황과 잠재적인 위기를 다시 짚어보고, 가장 우선 지켜야 할 과제와 가장 효과적인 자세를 재확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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