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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감별기에 롤렉스시계 대니 10.4초만에 "삐~" 판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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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일본유통자주관리협회(AACD) 오오타니 노리요 사무국장이 엄격한 심사를 거친 정회원에게만 부여하는 ‘안심의 증표’ 포스터를 소개하고 있다. 도쿄=구희령 기자

이상한 사무실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내선 안내전화 한 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 열쇠로 열고 들어가게 돼 있는 세 개의 하얀 문에는 아무런 안내판도 붙어 있지 않았다. 모두 보안 때문이다.

 “사무실 안에는 절대로 못 들어갑니다. 사진도 안 됩니다. 수치나 기준을 기사에서 자세하게 묘사해서도 안 됩니다.”

 일본유통자주관리협회(AACD) 책임자 오오타니 노리요(大谷規世) 사무국장은 지난달 25일 도쿄 지요다구에 있는 협회 회의실에서 중앙일보와의 단독 인터뷰 중에도 몇 번이나 ‘비밀 유지’를 강조했다. AACD는 일본 주요 병행수입업체가 모인 민간단체다. 이런 곳에서 ‘철통 보안’이라니.

 AACD의 주요 활동이 ‘가짜 상품 감별’이기 때문이다. 잠긴 문 너머에선 전문가들이 수많은 정품과 가품을 쌓아놓고 분석 작업 중이다. 124개 회원사에서 판별 의뢰를 한 제품도 쌓여 있다. 오오타니 사무국장은 “법적으로는 오직 해당 브랜드에서만 가품과 진품 여부를 말할 수 있다”며 “AACD는 가짜로 의심되는 상품을 ‘기준 외 상품’으로 규정하고 회원사에서는 취급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기준 외 상품’을 찾아내는 노하우가 공개될 경우 오히려 ‘진짜 같은 가짜’를 양산할 수 있기 때문에 보안에 각별히 주의한다고 설명했다. 오오타니 국장은 “저렴한 가짜가 횡행하면 병행수입 시장이 제대로 형성될 수 없다”며 “AACD가 1998년 설립된 배경도 ‘가짜 프라다 사건’으로 병행수입 시장의 근간이 흔들렸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지원 없이 업체만으로 협회가 구성됐나.

 “그렇다. 당시 주요 24개 업체가 자구책으로 협회를 만들었다. 수입한 물건이 가짜인지 판별하기 위해 여러 회사의 지혜를 모아야 했다. 회원사는 반드시 ‘기준 내 상품’만 팔아 시장을 건전하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어떻게 가짜 제품을 구분하나.

 “주요 23개 브랜드의 경우 각 50페이지 정도 되는 ‘AACD 매뉴얼’이 있다. 매뉴얼은 회원사에 1부씩만 배포하고 보관 장소 등을 협회에 신고해야 한다. 협회에서 회원사 직원을 대상으로 연수를 실시하고 시험을 쳐서 뽑는 ‘판정사’도 169명 배출됐다. 합격률이 20% 전후로 엄격하다. 판정사를 교육하는 AACD의 전문가가 새 브랜드나 판정이 어려운 제품을 수시로 검사한다.”

 오오타니 국장이 매뉴얼을 보여줬다. 지퍼·단추 등 제품 구석구석의 특징이 사진과 함께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분석기기도 이용한다. 금속분석기, 컴퓨터와 연결해서 200배 정도로 확대해 볼 수 있는 현미경 등 각각 600만 엔(약 6300만원) 하는 고가의 기계다. 거듭 요청해 금속분석기를 이용한 검사를 직접 볼 수 있었다. 속도측정기처럼 생긴 총 모양의 휴대용 기계를 들고 AACD 전문가가 인터뷰 장소로 왔다. 롤렉스 시계에 대고 바코드를 찍듯 기계를 대자 “삐~” 소리와 함께 10.4초 만에 분석 결과가 영수증처럼 나왔다. 철·망간·크롬 등 여러 성분의 비율이 표시됐다. “정품이네요. 모든 성분이 롤렉스와 일치합니다.”

-금속이 아닌 핸드백 등은 어떻게 판별하나.

 “지퍼 등도 분석한다. 현미경으로는 실 땀의 간격뿐 아니라 깊이까지도 1000분의 1㎜ 단위로 구분할 수 있다. 무엇보다 매일 무수한 정품과 가품을 직접 보고 검사하면서 안목을 기른다. 정품을 구입하는 데 대기업 회사원 연봉만큼 쓰기도 한다.”

 -한국 병행수입 시장 활성화를 위해 조언을 한다면.

 “AACD가 정착한 것은 대기업이 참여했기 때문이다. 또 일본은 91년 ‘유통·거래 관행에 관한 독점금지법상의 지침’(제3 병행수입의 부당저해 등)이 시행되면서 브랜드 본사가 원칙적으로 병행수입 제품의 수리를 거절할 수 없게 됐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신뢰를 얻는 일이다. 100% 정품을 드린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병행수입 때문에 수입물가가 내려갔나.

 “병행수입 시장이 없었다면 수입 제품 가격이 더 높았을 것이다. 병행수입업체는 정식 수입업체와 달리 이익률을 낮추거나 하는 등의 방법으로 자유롭게 가격을 책정할 수 있기 때문에 경쟁이 된다.”

도쿄=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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