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탄신 백주 특별 기고|「마크·클라크」 전 유엔군 사령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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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나는 이 박사를 잘 알았던 한 사람이다. 그를 인간적으로 좋아했고 그에 대해 큰 존경심도 가졌다.
이 박사는 나에게 매우 친절히 대해줬고 정중했다. 우리는 항상 피차간에 솔직이 의견을 털어놓곤 했다. 「유엔」군 사령관으로서 「유엔」과 미국 정부의 권한을 위임받은 내 의견이 이 박사의 견해와 일치할 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 박사는 내가 자기에게 솔직이 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두 사람의 관계는 별다른 「트러블」 없이 원만할 수 있었다.

<「아이크」 방한 귀 뜀에 흐뭇>
이 박사와 관련해서 두 가지 사건이 생각난다.
하나는 반공 포로의 석방-.
이 박사는 미국이 휴전을 얻어내기 위해 공산주의자들에게 굴복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나도 이 박사의 이런 우려에는 동감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결코 양보를 한 것은 아니었다.
이 박사는 이들 전쟁 포로는 한국군이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정부 임의대로 석방시키겠다고 몇번씩이나 위협했다.
나 역시 내심으로는 그런 이 박사를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 박사는 결국 반 공포로를 석방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우려했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공산주의자들에게 큰 「쇼크」를 주었을 뿐이다.
다른 한 사건은 대통령에 당선된 「아이젠하워」 장군의 돌연한 방한.
「아이젠하워」 장군은 선거 유세 때 대통령에 당선되면 곧 한국을 방문하겠다고 공약했었다.
나와 「아이젠하워」장군은 「웨스트·포인트」 (미 육군 사관 학교) 동기생이고 오랜 친우 사이였다.
「아이크」는 나에게 서한을 보내 일본에 들르지 않고 곧바로 한국에 갈 테니 모든 것을 비밀로 하고 이 박사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당부했다.
「아이크」가 서울에 도착하는 즉시 나는 그를 8군사령부로 안내했다.

<「유머」 감각 풍부, 농담 즐겨>
나는 「아이크」에게 이 박사를 만나지 않고 가면 나중에 이 박사가 당혹스러워 할 것이니 꼭 이 박사를 만나야 한다고 설득했다.
나는 「아이크」에게 다음과 같은 나의 복안을 설명해 줬다.
즉 이 박사에게 「아이크」가 극비리에 한국을 방문중에 있다고 알려주고 전선 시찰 때 이 박사를 「아이크」의 「지프」에 동승토록 제의하는 일이었다.
「아이크」는 나의 제안을 쾌히 승낙했고 이 박사 역시 이와 같은 사실을 전해듣고 매우 흐뭇해했다.
사실 이 박사는 「아이크」의 방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우리는 「아이크」의 방한을 극비로 했기 때문에 내 휘하의 지휘관들도 전혀 알지 못했다는 점을 이 박사에게 설명했더니 그 역시 충분히 이해해 주었다. 이 박사는 「유머」 감각이 풍부해 농담을 즐겼다. 이 박사는 그러면서도 완고하고 강경한 면이 있었다. 특히 공산주의에 대한 이 박사의 철두철미한 증오심은 나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나는 이 박사가 임종하기 직전 「하와이」로 그를 찾아간 일이 있었다.
이 박사는 그 당시 중태로 「프란체스카」부인 이외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내가 그의 병실에 들어가 『대통령 각하』하고 인사를 하자 이 박사는 한참동안 나를 쳐다보다가 내 목소리를 알아채는 것이었다.
휴전 협정이 체결될 무렵 이 박사는 미국 정부가 휴전 감시단의 일원으로 인도군을 추천한 것을 못 마땅해 했다.

<「독재자」 단정은 옳지 못해>
이 박사는 인도, 특히 「네루」 수상은 공산주의에 동조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박사는 인도군이 한국 땅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고 버텼다.
그래서 할 수없이 인도군을 「헬리콥터」로 DMZ까지 수송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내가 휴전 협정에 조인했을 때 이 박사가 다시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을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이 박사는 나에게 최고 무공 훈장을 수여하면서 『당신은 훌륭한 군인이요』라며 내 어깨를 어루만져 주었다.
그 뒤로 우리의 우정은 더욱 깊어졌다. 한국민과 미국 사람들이 이 박사를 독재자로 규정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이 박사는 한나라의 영도자였고 그것도 전시에 필요한 강력한 영도자였다.
만약 이 박사가 아니었더라면 한국은 공산주의자의 수중에 떨어졌을 것이다.

<차례>
①로버트·T·올리버 박사 (상) (중) (하)
④존·무초 전 주한 대사
⑤마크·클라크 장군
⑥매듀·리지웨이 장군 앨릭·버크 제독
⑦맥스웰·테일러 장군
⑧월터·매카나기 대사 카터·매그루더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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