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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 복원의 뜻은 역사 재현에|기존 도시 계획과 연관하여 생각해 볼 문제|임영방 <서울대 미대 교수·철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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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서울시는 총 공사비 약 14억원을 들여 도심지를 둘러싼 성곽을 전면 손질하고 광희문과 숙정문을 원형대로 목조 건물을 세워 복원할 방침을 세워 이미 공사를 착수한 것 같다. 서울 시내에서 아직도 눈에 띄는 성벽은 사직 「터널」에서 인왕산 중턱, 그리고 종로구의 동숭동 산 일대·삼선동과 장충 지구 등이다.
이 성벽들은 6세기 전에 군사상 방위의 목적으로 축성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세풍에 따라 적잖게 파손되어 오늘날 서울시를 돌아보면 옛 도성 잔존이 감상적 대상으로 보여지고 있다.
현재 서울 시내에서 옛 서울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것은 도시가 온통 고층 건물·고가 도로 등 「시멘트」 덩어리로 바꾸어진데다 그나마 잔존하는 성벽을 포함한 대부분의 유적이 판잣집들로 둘러싸여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애당초 서울 성곽은 방위상의 구축물이었지만 이것은 나아가 서울의 지리적인 한계와 그 건축의 규모 및 양상 등을 상상하게 해 준다. 다시 말하자면 옛 서울의 역사적 증거이며 서울 (수도) 의 상징이라 볼 수 있다.
금년부터 전면 복원할 방침을 세운 당국의 의도는 선조들의 문화적 유산에 대한 보호책이라 하겠고 한편 그나마 옛 서울에 살고 있는 하나의 모습을 제대로 되찾아주는데 있다고 생각된다.
이와 같은 문화 시책은 유적을 빛내고 새삼 역사적 주체 의식을 깨우치게 함으로써 시대적 정신이 구축물에 우러나도록 하며 또한 그들 구축물을 통해 그 미적 표 현의도를 엿보게 하여주는 성과를 생각해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의도를 실행에 옮기는데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곧 문화재에 관한 시책이라면 절대적인 원칙으로 보수·보존·활용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6세기전의 유적이라면 당시의 목적과 시대적 정신이 반영된 구조물이니 만큼 우선 이 자체를 존중하는 것이 우리 선조들에 대한 우리들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되는 것이다.
이 점은 정신적인 면이고 실질적인 면에서 피와 땀으로 이룩된 유적을 가꾸고 보존하고 활용함으로써 오늘의 우리와 옛날의 선조들과의 연결을 정신적이며 물질적인 양면에서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에 이르러 복원한다는 것으로써 6세기전의 것이 될 수도 없거니와 어떤 의미에서든 복원이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당시의 의의와 목적, 이에 부합된 표현, 그리고 성곽의 규모에 맞추어진 것이니 만큼 오늘의 우리로서는 이 조건을 되살릴 수 없는 것이다. 도리어 현존상황에서 볼 때 가꾸기는커녕 보존도 안될 지경임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성곽이 있다고 보면 주변에는 판잣집들로 둘러싸이게 허용하였고 아니면 고층 건물로 가려 그 잔존이 나마도 눈에 띄게 어렵게 되어버리고 있다.
물론 시대의 변천으로 도시구조와 양상이 달라진다는 현상만은 어찌 할 수 없다하더라도 옛 서울의 상징적 유적만은 벌써부터 보살폈어야만 한다. 성벽 주변의 환경 정리 보수 등으로 옛 정신의 표상이 남아 있다는 것을 의식토록 하는 문화재 보존책으로 실천되었어야 할 것이다.
만약 서울의 도시 계획이 애당초부터 그런 점에 기본적인 안목을 두었다면 오늘날 뒤늦게 성곽 복원 문제가 결코 제기되지 않았을 것이다.
선진국의 몇 도시를 예를 들어본다면 「이탈리아」의 고도 「로마」「시엔나」,「프랑스」의 남부 「아비뇽」등이 도시 계획과 사적 보존과의 합리적인 조화와 융합을 역력히 보여 주고 있다. 그에 비하여 서울은 사적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이루어진 잡상이고 이제 갑자기 복원 운운하는 것은 자칫 그 의도를 그르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생각하면 그나마 잔재하는 성곽의 규모나 위치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자연 입지 조건을 살리어 이뤄진 도시 한계선이라 할 수 있고 또한 바로 이 점을 서울시 구성상 절대 조건으로 참작하였어야만 했을 것이다.
전문가 문화재 위원의 의견을 토대로 하고 고증 자료를 동원하여 복원한다 하여도 그것은 오늘의 것이고 옛것은 안된 것이다. 이러한 예는 벌써 경주 불국사 복원에서 볼 수 있었다.
오늘의 「그리스」 사람들이 그들의 옛 사적을 보수·보존·활용하는데 전념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이 고증 자료가 없고 전문가들이 없어서 복원이라는 말을 안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옛것은 옛것, 오늘의 것은 오늘의 우리로서 표상 되게 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선조를 존중하고 흔히 말하는 주체성은 이런데서 나타나고 가져야한다.
성곽 복원이 자칫 잘못 이루어진다면 서울시의 도시 양상은 얻어 입은 양복에 옛 갓을 쓴 현대인으로 비쳐질 것이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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