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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의 분화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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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근간 『유태연감』에 따르면 미국엔 6백6만여명의 유대계 시민이 살고 있다. 「이스라엘」 인구의 두배를 넘는 수이다. 이들 중에는 대통령에게 허물없이 전화를 걸 수 있는 사람도 상당수에 이른다.
이들 유대계 시민의 영향력은 그 정도로 무시할 수 없다. 지난 4차 중동전 당시 「닉슨」은 의회에 무려 22억「달러」의 긴급 원조를 요청한 일도 있었다. 개전 2주만에 「이스라엘」의 공채는 1억5천만「달러」어치나 팔렸었다.
미국의 유대계 시민들은 『우리가 「키신저」를 국무장관 자리에 보냈다』고 말한다. 하긴 미국의 재력을 움켜쥐고 있는 「뉴요크」시의 「월스트리트」 증권가를 「주·스트리트」 (유대가)라고도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이다. 「키신저」의 오늘이 이들 유대계 유 력 인사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놀랍지도 않은 비밀인 모양이다.
상원의 「J·제이비츠」 의원 (공화)을 비롯해 3대 방송망·「뉴요크·타임스」지 등에도 유대계의 두뇌들이 부단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포드」 대통령도 부통령 당시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무기 원조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강경 발언을 서슴지 않은 일이 있었다.
한편 소련에도 유대계 시민들은 상당히 많다. 이 지구상에서 미국 다음으로 많은 유대인이 살고 있다. 연감에 보면 2백64만명으로「이스라엘」의 인구와 비슷하다. 이들은 희망에 따라 「이스라엘」에의 이민이 가능했었다. 그러나 지난 67년 중동전 이후 소련은 「이스라엘」과의 외교를 단절해 버렸다. 그후 이주 제한 조치엔 내외의 여론 압력이 대단했었다.
소련은 이들의 압력에 다소나마 숨구멍은 터주고 있었다. 71년엔 1만5천명, 72년엔 3만2천명, 73년엔 2만2천명이 「이스라엘」에의 이주가 허가되었다. 그러나 지난 74년엔 그 수효가 2만명으로 줄어들었다. 바로 지난 12월엔 불과 9백명만이 이주 허가를 받았을 뿐이다.
소련으로는 서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아랍·게릴라」의 반발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들 「게릴라」는 이미 「체코」와 「오스트리아」의 국경 지대에서 유대인 이 왕자가 타고 있는 국제 열차를 습격한 일도 있었다. 인력 부족에 고민하는 「이스라엘」에 이민을 보내는 것은 「아랍」측으로 보면 이적 행위이기도 하다. 소련은 「아랍」의 매서운 눈초리를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최근엔 그와 같은 이민 제한 논의에 반대하며 소련에서 단식 투쟁을 벌인 유대인들이 비밀 경찰에 의해 수난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근착 「타인」지에 따르면 소련 안의 유대인 저항 운동가들은 길거리에서 납치되어 「앰뷸런스」에 실려 가는 일이 빈번하다. 어떤 사람은 사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유대인 박해가 시작되고 있는 인상이다.
게다가 소련은 지난 72년에 협정한 최혜국 대우의 「미·소 무역 협정」을 폐기해 버렸다. 이것은 소련 안 유대인의 이민자에 대한 미국의 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한 하나의 회답이기도 하다.
중동은 바야흐로 75년의 분화구로 끓어오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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