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연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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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명목뿐인 창작극이 난무했다는 비판은 받았지만 74년은 20여회의 대극장 공연과 연중무휴의 소극장들로 해서 연극계가 바삐 움직인 해였다. 74년 연극계의 이런 활발한 움직임은 75년에도 그대로 이어질 것인지, 그렇다면 어떤 방향으로 이어지는 것이 좋은지, 75년에는 반드시 시정되어야 할 연극계의 숙제는 없는지 등을 3인의 정담으로 진단해 본다.
여=문예진흥원의 창작극 지원이 문예진흥 2차연도가 되는 75년에도 계속될 것이므로 75년에도 창작극 공연이 풍성할 것이라는 전망을 우선 세울 수 있겠지요? 해마다 연초가 되면 각 극단이 그 해의 공연 계획을 발표하는 것이 옳은데 국립극장을 제외하고는 지켜지지 않아 유감이군요. 각 극단의 공연 계획이 미리 밝혀지면 극계의 방향도 쉽게 전망이 될텐데 말입니다.
김=그렇죠. 우리 극계는 상·하반기로 나누어 공연을 하니 연초에 상반기 계획만이라도 각 극단이 알려야겠죠. 제 견해가 낙관적일는지는 몰라도 저는 75년에는 74년보다 연극계 사정이 나아지리라고 봅니다. 74년의 창작극 공연 수준은 참 말도 많았는데 74년은 문예진흥원의 지원이 처음 시작된 해였지 않아요?
75년에는 그러나 각 극단이 지원이 있으리라는 것을 계산하고 미리 미리 작품을 선정하고 공연 준비를 하는 것 같으니 공연 수준이 조금은 향상될 것이라는 전망이고, 이것은 또 제 희망이기도 합니다.
또한 75년 상반기에는 문예진흥원이 지원 조건으로 꼭 새로운 창작극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신극 운동 50∼60년 사에 남는 좋은 작품의 「리바이벌」도 허락하고 있으니 공연 수준이 나아질 것 같군요.
여=그러나 극작가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상이 1, 2년 안에 쉽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좋은 극작가가 나오지 않고 작품이 미리 준비되지 않는데 공연 수준이 나아질 것 같지 않군요.
창작극이든, 번역극이든 새로운 작품만 공연하러 들것이 아니라 새로운 「스텝」들이 작품 분석과 구성을 새로이 해 좋은 작품은 「리바이벌」하는 움직임은 바람직하게 느껴집니다.
정=극단적으로 말하면 75년에도 공연 작품의 질은 외면된 채 수만 증가하지 않을까 염려되는군요.
여=문예진흥원의 지원 방식에 대해서는 어떻게들 생각하십니까? 저는 지원 방식이 바뀌어야 된다고 보는데요. 실상 74년 같은 참담한 결과는 창작극 지원이 극단 지원을 거쳐 곧장 극작가 지원으로 직결되었던 데서 초래됐읍니다.
극작가의 절대수가 부족한 실정이라 극단은 좋은 작품이든, 그렇지 못한 작품이든 작품 구하는데 급급했고 극작가는 써내려 가기에만 바빴지 않았읍니까.
그래서 지원 방식으로 작품 「풀」제가 바람직합니다. 그래야 각 극단들은 좋은 작품을 자유로이 고를 수 있고 나쁜 작품은 저절로 도태될 것 아닙니까.
김=지원 폭의 문제는 어때요? 지원의 혜택을 얻은 극단은 9개의 전문 극단들이었는데 돈 없는 젊은 연극인들을 도와야 하지 않겠어요? 연극 협회의 준회원 혹은 비회원인 이들 단체들의 공연 「페스티벌」을 주최해 준다든가, 방법은 많을 텐데 말입니다.
정=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읍니까. 그런데 요즘 들어 연극계는 기성 극단들이 기존 세력권을 형성하고 있어 새로운 연극인들이나 새 극단이 정착하기가 힘들어요. 현재의 극단들은 대부분 동인제 형식으로 60년대에 창립된 단체들인데 그 당시는 극단을 창립하고 공연을 하면 그대로 연극 단체로 인정되고 공연 기록은 그대로 연극사가 되었지 않아요?
여=그 문제는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기성 연극 단체가 있기 때문에 70년대에는 젊은 연극인들의 배출이 오히려 용이할 수도 있어요. 기성 극단이라는 도전 대상이 있으므로 기성 극단이 지니지 못한 실력을 확연히 보여줄 수 있지요. 또 최소한 60년대의 극단들이 겪었던 혼미나 시행착오는 거듭하지 않아도 되지 않습니까.
김=좀 묘한 생각입니다만 우리가 우리 연극계에 대해 너무 비판적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제는 연극인과 연극 단체도 많아졌고 소극장만 해도 5, 6개를 넘어 모든 연극 공연을 빼놓지 않고 보러 다니자면 상당히 바쁘게 되지 않았습니까. 연극사가 같고 연극 공연이나 관극이 생활화된 외국의 연극계를 흠모하다 보니 자꾸 비관적으로만 판단하러 드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정=비평가들의 문제는 어떻습니까. 비평가들이 현재는 너무 연극 공연 자체에 대해서만 비판을 가하지, 연극의 이상을 그린다거나 연극계가 나가야 할 방향을 이끈다거나 하는데는 소홀한 느낌인데요.
김=사실 어떤 때는 화가 나기도 합니다. 연극을 몇 년씩하고 숱한 진통을 겪어 가며 공연을 끝내고 나면 슬쩍 구경을 하고 가서는 한마디로 평을 내려 버리질 않나, 배우의 동작이나 의상 같은 세부적인 문제만을 꼬집질 않나! 깊이 있는 본격적인 비평을 하지 않을 경우에는 신문에든, 잡지에든 평이라는 단어를 쓸 수 없는 것입니다. 혹시 「리뷰」면 몰라도 말예요.
정=동감입니다. 연극 단체와 연극인들의 수가 늘어났다는 이야기가 좀 전에 나왔는데 사실 요즘은 저의 경우 연극인들만 만나도 하루가 지날 정도로 연극에 뜻을 둔 사람이 늘어난 것 같아요. 그런데 연극인들이 연극계 내의 일만 갖고 시시콜콜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연극인들의 수준이 평준화되고 있는 것 같아요. 뛰어난 사람이 없고 말입니다.
여=나도 그 점은 큰 문제라고 봐요. 배우를 포함한 인재 양성은 국립극장이 맡아야 할텐데 국립극장이 이 책임을 못하고 있어 걱정이고… 재주 있는 사람이 연극계에 얼마나 나오느냐가 결국 연극계를 결정짓는 것인데, 75년에는 많은 신인이 나오기를 기대해 봅시다.

<참석자>
▲김의경씨 <극작가>
▲여석기씨 <연극 평론가·고대 교수>
▲정진우씨 <연극인·서강대 강사>
▲때·장소=10일 하오 4시 본사 회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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