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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노점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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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시장·학교 부근·유원지 등 장사가 될만한 곳이면 아무 곳에나 길가 빈자리를 차지하고 장사를 벌이는 노점상들은 하루를 살기 위해 하루를 버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노점상 중「리어카」를 끌거나 포장마차를 세워놓고 장사하는 사람들은 대개 남자지만, 광주리나 판자에 물건을 놓거나 들고 다니며 물건을 파는 여자들이 많아서 서민여성들의 직업으로 노점상은 이제 빼놓을 수 없는 자리를 차지한 느낌이 짙다.
남대문시장에서 채소 장사를 하는 서정애씨는 두 남매와 남편,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30세 된 주부다. 2년전 어느 봄날 월 1만5천여원씩 버는 남편의 벌이로는 5식구의 생계가 지탱될 수 없어 결심을 단단히 하고 3천원을 밑천으로 장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은 자본금이 조금불어 때로 5천원, 때로 1만5천여원에 이르기도 하지만 역시 「하루벌이」를 못 면하고 있다. 대개 장만한 물건을 하루에 다 팔고 손을 털고 새로 물건을 떼어 오기 때문에 그는 노점상을 하루벌이라고 생각해왔으나 『요즘은 불경기라 하루벌이가 사흘벌이가 되기 일쑤』라고 말한다.
하루의 이익금은 11월 들어서는 5백원을 넘기 힘들었다. 장사가 잘될 때는 매일 1천원까지도 올랐었지만, 올 여름부터는 1천원을 넘은 날이 드물었다. 하루벌이 중 1백원을 청소비로 남대문시장 주식회사에 내고 나면 한 달에 그가 버는 액수는 평균 1만2, 3천원이 되는데 비오는 날, 한겨울에는 장사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돈조차 매달 손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그의 하루 일과는 상오 5시에 일어나 밥을 지어먹고 집을 치운 다음 9시쯤부터 시장에 나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남대문시장 주식회사 경비원들은 한낮의 장사는 금하고 하오 5시부터나 장사를 허용하지만, 그는 소쿠리를 이고 쫓겨다니면서도 낮 장사를 포기할 수는 없다. 하오 5시 이후에는 장사가 도무지 되지 않는 때문이다.
손님의 주의를 끌기 위해 『물건 좋아요』를 외치고 물건을 좋아 보이게 하려고 배열을 이리저리 바꿔보거나 물을 축여가며 장사를 마치고 나면 하오 9시께 걸어서 30분 거리의 집에 돌아가 저녁을 해 먹고 난 후 남은 물건을 다듬고 나면 밤 12시 이전이 취침시간이 되는 경우가 드물다.
중부시장에 가 물건을 떼 오는 날은 상오 4시30분에 일어나야 한다. 이런 고달픈 생활 속에서도 그는 『애초에는 내가 버는 돈은 저축하려 했으나 모아지지 않고 그날그날 생활비로 없어진다. 저축을 한다거나 집을 장만하는 것은 아직 엄두도 못 내겠고 매일 물건이나 잘 팔렸으면 좋겠다』고 희망을 말한다.
옷이나 여러 종류 과일보다는 채소·고무장갑·「가제」수건·덧버선·한가지 종류의 과일, 한가지 종류의 생선 등 주로 밑천이 많이 들지 않고 물건 무게도 무겁지 않은 품목을 골라 파는 여자 노점상들은 세금을 내는 것도 아니고 특정 업체에 소속된 것도 아니므로 그 수가 얼마인지 헤아리기 어렵다. 남대문시장의 경우 회사가 매일 거둬들이는 청소비를 기준으로 하면 하루 평균 2백여명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 중 여자노점상이 반 이상이다.
비가 오거나 한겨울에는 3분의 2 이상이 장사를 쉬는데 이들 노점상들의 장사는 경기와 계절에 어느 장사보다 민감하다. 호경기일 때는 물건 양이 늘고 계절이 바뀌면 물건 품목이 일제히 바뀐다. 덧버선을 파는 한 할머니는 봄에는 완두콩을, 여름에는 고추를 팔았는데 빈 양주병이 인기를 끌었던 작년에는 양주병 장사로 「재미를 보았다」고 말한다. 어느 국민학교가 어느 곳으로 소풍을 간다는 정보를 입수하면, 원정도 다니는 이 할머니는 한때는 보따리를 이고 행상도 다녔지만, 행상이 크게 잘 벌리는 것도 아니고 힘만 더 들어 밑천이 5만원만 되면, 같은 길가라도 간이점포를 세워놓고 장사를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실제 나이보다 겉늙어 보이는 대부분 30대 이상의 노점 여 상인들은 물건을 떼어 올 때 품목에 따라 조금이라도 더 싼값에 사들이기 위해 채소는 중부시장으로, 과일은 중앙시장으로, 옥수수 등은 청량리역 근처로, 생선은 수산시장으로 헤매는 고달픈 장사를 하지만, 적은 밑천으로 자유롭게 일하는 직업이라 업체에 소속되어 월 평균 1만6천여원을 받는 다른 여성근로자들 (74년 노동청 집계)처럼 전직할 의향이 없다. 몸수색·작업장 환경시비 등의 문제가 따르지도 않고 자신의 의사에 따라 장사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구청이나 경찰서에서 노점상 일제 단속을 실시할 때면 장사할 곳을 잃는 이들은 자신들이 파는 물건이 불량 상품인지, 유해 식품인지 가려낼 관심이 없고 단지 하루빨리 경기가 풀려 장사가 되기만을 바라고 있다. <박금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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