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는 레노버 … 분기 매출 사상 첫 100억 달러 돌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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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노버의 질주가 거침이 없다. 13일 레노버는 지난해 10~12월(회계연도 기준 3분기) 올린 실적을 발표했다.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성적이었다. 매출은 108억 달러(약 11조2000억원)로 1년 전보다 15% 늘었다. 사상 첫 100억 달러 돌파다. 순이익 역시 29% 증가한 2억6500만 달러였다.

레노버는 지난달 모토로라와 IBM 서버 사업부를 잇따라 삼켰다. 각각 29억1000만 달러와 22억9000만 달러를 들인 초대형 인수합병이었다. 휴대전화 상용화에 처음 성공한 모토로라와 애플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개인용 컴퓨터(PC)를 내놨던 IBM. 미국 정보기술(IT) 산업의 상징과 같은 두 회사가 오롯이 레노버에 넘어간다는 소식은 시장에 충격을 가져다줬다. 레노버의 ‘과식’을 걱정하는 시각이 우세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그러나 이날 발표한 성적이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킬 만한 향상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전화 인터뷰에 응한 레노버 양위안칭(楊元慶) 회장의 말투도 자신감에 차 있었다.

 - 모토로라에 누적된 손실은 어떻게 할 건가.

 “레노버와 모토로라 합병으로 자재 조달과 물류 부문에서 발생하는 비용이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손실은 2분기(6개월) 정도면 털어버릴 수 있다.”

 - 시장 전문가와 투자자들은 이 두 대형 인수합병이 지나치게 공격적이었다고 평한다.

 “절대 공격적인 투자가 아니다. 우리가 오래전부터 세워둔 전략에 딱 맞는 계획적 투자였다. 두 회사를 같은 시기 인수할 수 있었던 점은 오히려 행운이다.”

 레노버 최고재무책임자(CFO) 황웨이밍(黃<4F1F>明)은 한발 더 나갔다. FT와의 인터뷰에서 “레노버는 47억 달러 규모의 여유 현금을 갖고 있다”며 또 다른 대형 인수합병을 예고했다. 레노버는 기술을 차근히 축적하는 방법 대신 빠른 길을 택해왔다. 필요한 역량을 갖고 있는 다른 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이다. 13년째 레노버를 이끌고 있는 양 회장의 변함없는 전략이다.

 공격적으로 인수합병에 나섰고 폭발적으로 커가는 중국 내수시장이 성장을 뒷받침했다. 2004년 레노버는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PC 시장에서 점유율 1위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취임 3년 만에 첫 번째 공약을 지킨 셈이다. 남은 목표 ‘세계 제패’를 향해 양 회장은 질주를 멈추지 않았다. 그해 12월 IBM PC사업 부문을 17억5000만 달러에 인수하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리고 지난해 말 나머지 공약(세계 PC 시장 점유율 1위)까지 실현해냈다.

 PC 부문을 점령한 레노버는 이제 스마트폰·태블릿컴퓨터 세계 시장 1위를 새로운 목표로 설정했다. 지난해 말 기준 레노버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스마트폰 4.3%(5위), 태블릿컴퓨터 4.8%(4위)로 아직 1위 삼성이나 애플과는 격차가 크다. 레노버가 47억 달러 현금을 무기로 ‘전투적’ 인수합병을 계속하겠다고 선언한 배경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이날 ‘깜짝’ 실적에도 불구하고 홍콩 증시에서 레노버 주가는 0.6% 하락했다. 한 달 전과 비교해도 8.5% 낮다. 레노버의 전망을 어둡게 보는 시선이 적지 않아서다. 블룸버그통신은 “레노버는 세계 PC 시장 점유율 18.1%로 1위를 달리고 있긴 하지만 주력 사업인 PC 시장 규모 자체가 2009년 이후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 시장을 노리는 기업이긴 하지만 중국 의존도가 높고 저가정책 때문에 이익률이 높지 않다는 점이 한계다. WSJ는 “레노버는 매출의 40%를 중국에서 올리고 있다.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률은 5.3%로 1년 전 4%보다 상승하긴 했지만 모토로라 인수 등 변수를 감안하면 수익률을 더 끌어올려야 한다”고 분석했다.

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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