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은 전략게임, 군과 잘 맞아 … 장병들과 '빵 내기' 대국 즐겨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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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한국프로기사회장은 “바둑은 중독성이나 폭력성을 염려할 필요가 없고 폭넓은 사고력을 키울 수 있다”며 “9줄짜리 보급용 바둑판으로 시작하면 쉽게 접할 수 있다”고 권했다. [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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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여성으로는 최초로 한국프로기사회장에 취임한 김효정(33) 프로 2단의 휴대전화 연락처에는 중간 번호가 ‘50’으로 시작되는 번호가 유난히 많았다. 군에서 보급하는 휴대전화의 고유번호다. 이유가 있다. 그는 올해로 6년째 군(軍) 바둑 보급 활동을 이끌고 있다. 지난 5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 사무실에서 김 회장을 만났다.

 “솔직히 바둑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잖아요. 대중화를 위해 뾰족한 수가 없을까 고민하다가 군대를 떠올렸죠. 바둑을 배우고 싶어도 바빠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군대라면 여가시간을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게다가 미모의 여성 기사들이 가면 반응이 더 좋을 거라고 예상했고요.”

 김 회장은 쉽게 익히고 재미를 느끼게 하기 위해 표준형(19줄)보다 금방 승부가 나는 9줄짜리 보급형 바둑판도 준비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사병, 장교 할 것 없이 바둑판 혹은 여성 기사 앞으로 모여들었다. ‘블루 오션’을 찾은 것이다. “바둑이 일종의 전략 게임이거든요. 군과 잘 맞죠. 낯설어 하던 장병들도 금세 빠져들어 ‘빵 내기’ 바둑도 겨루곤 해요.”

 이렇게 6년간 바둑 보급을 위해 전국의 군부대를 찾아다녔다. “철원·사천·남양주·평택·진해 등 전국 안 가본 지역이 없는 것 같다”고 한다. 현재는 전국 15개 부대가 고정적으로 강습을 듣고 있다. 각 부대마다 1명의 여성 기사들이 전속으로 배정돼 주말마다 찾아가 4시간씩 가르친다.

 김 회장의 예상이 적중한 것은 또 있었다. 미모의 여성 기사 배윤진 3단이 강습 활동 중 육군 ROTC 장교와 교제해 결혼에까지 골인한 것이다.

 김 회장이 바둑을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다. 바둑을 좋아하는 아버지가 오빠와 언니만 바둑을 가르치자 ‘왕따’가 되기 싫어 졸라서 배웠다고 한다. 오빠는 학업으로 관심을 돌렸지만 두 자매는 프로기사가 됐다. 언니인 김현정(3단)씨는 일본기원 소속으로 나고야에서 활동 중이다. 김 3단의 남편도 일본인 프로기사다. 10여 년 전 국내에서도 많은 인기를 모았던 일본 만화 ‘고스트 바둑왕’에서 일본 바둑팀 단장을 맡은 구라타 아쓰시의 실제 모델이 바로 김 회장의 형부다.

 김 회장은 바둑의 대중화를 고심 중이다. 우선 ‘바둑이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것부터 시작하겠다고 작정했다. 그래서 직접 ‘펀펀 바둑’이라는 교습용 프로그램을 찍었다. ‘펀펀 바둑’은 유튜브 같은 웹사이트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김 회장은 “룰도 단순하고 스타크래프트처럼 유닛(Unit)마다 외워야 할 특성도 없다”며 “바둑을 배우는 데 2시간이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글=유성운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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