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길 교수의 중·고교 영어 교과서 과오 지적을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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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문교부 방침에 따라 중·고등학교 영어 교과서가 단일 본으로 개편됨에 따라 필자도 그 편찬 위원의 한사람으로 그 작업에 참여하였다. 위원들이 무엇보다도 당면한 고통과 불안이란 시간에 몰리고 쫓기었다는 변명에도 불구하고 교과서 자체의 영어가 틀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책이 나오고 보니 원고 자체의 과오·교정 과오 등이 산견되어 민망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이 과오들은 이미 수집 중이어서 내년까지는 이를 수정하기로 기약하고 있다.

<단정하기 어려운 과오>
이번 「코리아·타임스」와 중앙일보에 기고한 원광대학의 양 교수의 과오 지적도 그런 의미에서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외국어 지식이란 절대적인 것이 되지 못해서 이것은 명백한 과오라고 단언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
양 교수가 지적한 몇 가지 점을 필자는 필자 나름대로의 영어 지식과 미국인 교사 몇 명과의 논의를 거친 결과를 가지고 재고해 보련다. 더우기 유력지에 일단 과오라고 지적되고 나면 일선 교사들이 당황하게 된다는 큰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We are not likely to be a brave fighter는 주어가 복수기 때문에 fighters로 복수가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문법상 배분 단수(Distributive singular)의 경우로 과오(error)가 아니다. We have a nose이지 We have noses라 고는 하지 않는다. On Christmas Eve children are told to hang a stocking at the foot of the bed의 a stocking이나 같은 경우다. 뒤에 each를 의미상 보충해 보면 된다.

<공식화로만 못 따져>
다음 The mud stains that get onto while clothes… difficult to clean off의 get onto는 into라야 되고 clean off는 get out로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stains는 옷감에 스며드는 액체로 된 오점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into를 주장한 것 같은데 흙탕이 튀어서 옷에 붙는다는 부착 개념으로 보면 onto고 따라서 clean off에도 아무 이의가 없을 것으로 안다. knife에 생긴 stain은 clean off라 할 수 없겠는가?
다음 I can't define what the strange thing is의 define은 describe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는데 그렇게 되면 뜻이 달라진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describe의 경우는 what it looks like의 문제요, define은 what it is의 문제라고 본다. 이것은 define이라는 단어의 용례의 하나로 다른 용례와 같이 준 것이고 이 예문은 어떤 사전에도 나와 있는 것이다.
다음 No wonder nobody is happy with the plan. 양 교수의 지적은 사람인 경우에는 with고 things인 경우에는 about래야 한다는 것인데 그런 명확한 구분을 무엇을 근거로 해서 세운 것인지 알 수가 없다. Nobody was satisfied with the Plan이 정상적인 영어라면 about냐 with냐를 그렇게 공식화해서 따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쓰는 영어냐 아니냐가 문제로 될 줄 안다.
우리 연구소에 와 있는 다섯명의 미국인은 한사람도 with를 틀렸다고 하지 않고 마침 미군의 모 장군한테 당신은 with와 about중 어느 쪽을 쓰겠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with를 택하겠다고 하였다.

<과오 아닌 과오 지적도>
다음 When he was going out of the house to escape from a severe scolding, she threw a pitcher of water upon him의 escape from이냐 escape냐의 문제이다. 물론 「…을 원한다」는 뜻으로는 escape punishment, escape death식으로 타동사로 쓰고 「도망친다」는 뜻으로는 escape from prison등 자동사를 쓴다.
그러나 이것 역시 수학 공식처럼 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바가지를 긁는 마누라한테서 「도망치듯」 빠져나갈 때 어째서 escape from∼이 안될 것인가? 지면이 허락하지 않아 더 상세하게 논하지 못하는 것을 유감으로 생각하며 앞으로 시사 영어 잡지를 통해 보다 많은 용례를 들어 지적해 준 것들이 최소한 「에러」가 아니라는 점을 재론하겠다.
신문이라는 것은 독자에게는 거의 마력과 같은 설득력이 있는 법이어서 일단 신문에 과오라고 그렇게 크게 보도되고 보면 그 교과서를 쓰는 사람들은 그것이 영어 교과서가 아니라 희랍어 교과서라고 착각할 우려까지 있다. 천재한 필자로서 잘못을 지적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잘못도 아닌 것을 잘못이라고 지적 받는 것은 전체 교육 효과상으로 보나 필자 개인으로 보나 환영할 일은 못 된다고 생각된다. 【황찬호 <서울대학교 어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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