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상에 간격… 한일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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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가미야후지<일 경응대 교수>】한·일 관계가 매우 우려스럽게 되어가고 있다. 정부간「레벨」에서는 쌍방이 모든 것을 냉정히 처리하려 하고있어 파탄이 올 것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국민 일반의「무드」에서 보면 결코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태가 이쯤 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작년의 김대중 사건·일인 두 사람을 비상군재에 회부한 최근의 사건 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불행한 사건이 계속된 지난 1년을 돌아볼 때 느껴지는 것은 한·일 양 국민의 발상의 근본에는 메우기 어려운 간격이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근본적인 간격을 고려치 않고 당면한 사태를 호도하려 해도 거기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없을 수 없다. 그 한계가 최근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이 아닐까?
「발상의 간격」을 불문에 붙인다는 것은 공통의 「룰」이나 「사인」을 정하지 않고 야구를 시작하는 것과 같다. 쌍방은 각기 자기의 「사인」이 상대방에 통할 것이고 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통할 수 없는 것은 뻔한 일이다. 「스트라이크」라고 생각되는 것을 상대방에서 폭투라고 우기게 된다면 경기는 진행되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공통의「사인」이나 「룰」이 없는 데는 뿌리깊은 연유가 있다. 이유를 찾으면 적어도 「36년간의 식민지지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일본인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과거의 사실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요소가 국민감정 깊숙한 곳에서 복잡 미묘한 방사능을 아직도 내뿜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오래 전까지 들추지 않고 태평양전쟁 후나 한·일 관계 정상화 뒤의 한정된 시기에만 국한시켜 보더라도 한·일간의 대차대조에 관한 양국의 평가에는 적어도 심리적·감정적으로는 커다란 상위가 있는 듯하다.
종합적인 면에서 한국은 일본측이 흑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국은 피를 흘리면서까지 반공의 방벽역할을 하며 일본의 안전과 평화에 기여해오지 않았는가. 또 지난 10년간의 한·일 경제관계에서도 일본은 커다란 경제활동의 무대를 얻은 것은 아닌가하는 기분을 다소간 지니지 않은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측은 종합적으로 보아 한국측이 흑자라고 생각한다. 현재 세계은행이나 IMF까지 상당히 높이 평가하고있는 한국경제가 현 수준에 이른 것은 일본의 원조와 협력이 크게 기여한 것이며 앞으로도 한국경제발전에 일본의 존재는 불가결한 게 아닌가하는 것이 일본인의 숨김없는 진심이다.
이런 이야기를 끄집어내 의논해봤자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든가, 감정만 상하게 하는데 지나지 않아 양국의 협조관계를 촉진하는데는 쓸모 없다는 것을 양쪽 모두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이런 대립은 거의 드러나지 않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양국관계에 관한 평가가 서로 일치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기본적인 발상에 간격이 있는 경우에는 사소한 것 때문에 감정적 대립을 증폭시키지 않도록 한·일 쌍방이 신중해야 한다. 일본신문에서는 거의 『일본인 학생 2명 체포」라고 보도하고있다. 그러나 한국이 발표한 기소사실에는「학생」이라고 하지 않는다. 한사람은 「대학강사」, 또 하나는 「기고가」이라. 「학생」이라든가, 「유학생」이라고 하면 나이도 어리고 재력도 없는 젊은이의 「이미지」를 주기 쉽다. 무력한 학생을 한국이 부당하게 체포하여 처벌하려고 한다는 「이미지」가 여기서 비롯된다. 솔직히 말해 두 일본인은 나이나 경력 면에서 보통학생과는 경우가 다르다.
한국이나 미국, 또는 중공에 관해 그 나라의 법규와 체제를 어떻게 비판한다하더라도 그건 우리들의 자유이다. 하지만 그 나라에 있는 한 그곳의 법규를 대수롭지 않게 위반해서는 안 된다. 이는 만국의 공법이다. 이번 일에 관한 한 재판이 끝날 때까지 「정관」하는 수밖에 없다는 일본정부의 태도는 이러한 뜻에서 옳다고 할 것이다. 【JP=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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