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체제개혁 없는 화해에의 도전|솔제니친 추방의 정치적 의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솔제니친」의 추방은 소련을 문명된 정치제도로 유도해 나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 주었다. 경제적 현대화나 서방측과의 접촉, 또는 외교적인 암시로 소련권력의 성숙을 도모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는 미국이 준비하는 전면적인 노력만으로 가능할 것이다. 「솔제니친」은 소련 망국 자로 하여금 자신을 추방하지 않을 수 없도록 끈질기게 도전함으로써 서방에서 살고있는 우리들에게 과연 우리는 소련정권에 압력을 계속 가할 만큼 평화와 자유의 발전을 원하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 것이다.
이점을 분명히 인식하자. 「솔제니친」은 지속적이고 널리 알려진 저항활동으로 자신에 대한 탄압을 자청했다.

<탄압을 각오하고 저항>
그는 아마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계속 강력한 소설을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추방되기 하루 전에 그가 한 말은 소련정권에 대한 특별히 날카로운 도전이었다. 그는 그때 소련 안에서 횡행하고 있는 『일반화된 무법상태』때문에 소환에 응하지 않겠다고 말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그의 태도는 약간의 의문을 자아낸다. 그는 왜 당국의 강권발동을 스스로 자초한 것일까? 그렇게 해서 무엇을 증명하려 했단 말인가? 이에 대한 해답은 「브레즈네프」가 그동안 거둔 성과가 대단했다는 점에 있다. 즉 「브레즈네프」는, 소련공산당 체제의 대내적 압제를 포기하지 않은 채 서방과의 긴장완화·경제적 발전을 이룩하고 있다는 점에 있는 것이다.
비록 통제된 것이지만 서방측의 상품이나 기술, 그리고 자본이 들어와 소련은 이제 점차 활기를 띠고있는 것이다.
TV「세트」·자동차·전자계산기 등이 이제는 소련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만큼 생활수준은 개선되었다.
이와 같은 소련의 서방지향 움직임은 대체로 서방측의 독창력과 발명을 빌려 온 것이기 때문에 당은 이에 대한 지배권을 가졌고, 군대는 소련의 자원을 장악하고 있다.
서방측은 소련에 대해 기술협조를·해주는 대가로 소련에 요구를 하는 것이 있다.
예컨대 미국 측으로부터 압력을 받아 소련은 유대인의「이스라엘」이민에 대한 장벽을 조금은 완화하기에 이른 것을 들 수 있다.

<화해로 소 체제 못 바꿔>
그렇지만 정치적인 변화는 아직도 태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로 진정한 변화를 주장하는 반체제 인사들이 하나씩「시베리아」의 수용소로 끌려갔고 그렇지 않으면 여러 가지 형태로 정치망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 같은 배경 아래서 반체제인사들은 소련당국에 대항하려는 결의를 분명히 했던 것이다.
그러나「사하로프」와 마찬가지로 「솔제니친」은 지금과 같은 소련체제 안에서 개혁을 시도한다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따라서 고통을 자초하면서까지 「솔제니친」은 서방측에 호소를 하게된 것이다.

<작가엔 기본적 자유를>
그는 서방측의 자본과 기술지원에 대한 단순한 대가 이상을 소련에 요구해야한다고 우리에게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소련이 선진세계에 들어가는 대가로 우리는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주장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곤 있는 것이다. 그는 마약 서방측이 지금 강한 압력을 가한다면 「브레즈네프」는 굴복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솔제니친」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한다. 미국이「데탕트」의 대가를 인상해야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소련이 교활하게 수 천명의 유대인 이민을 허용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만약 소련이 선진국의·일원이 되고자한다면 그들은 선진국다운 행동을 해야한다. 그것은 곧 동구의 군사력을 감축하고 온 세계가 집필활동을 계속하기를 바라는 가장 위대한 작가의 한 사람에게 기본적인 자유를 허용해야한다는 뜻이다.

<내부의 압제 완화해야>
지금까지「닉슨」과「키신저」는「데탕트」의 테두리 안에서 소련정권이 내부 압제를 서서히 완화하도록 조심스럽게 압력을 가해야 된다고 변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신중논의 취약점이 어디에 있는지는 분명해졌다.
만약 「데탕트」의 주도적인 이들이 지금 보다 공공연한 방법으로 소련에 압력을 가하지 않는 다면「닉슨」과「키신저」는 자유와 도덕문제에 대해 무감각하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현재「데탕트」를 찬동하고 있는 미국여론의 지지를 잃게 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