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고교의 학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학부모들의 큰 관심을 모은 서울·부산의 고등학교 학군이 결정되었다.
이를 위해 서울시 교육위가 주관한 연구팀인 학군 실행 위원회·학군 평가 위원회·한국 과학 기술 연구소 사이에는 8개월에 걸친 협의 검토가 있었다고 한다. 서울의 경우에는 그동안 37개의 학군시안이 나왔었다고 까지 한다.
그러나 그처럼 애를 써서 드디어 학군이 마련되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다 종결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오히려 이제부터다.
당초 고교학군제를 도입하려는 것은 각 학교 사이의 지나친 격차를 해소하여 이른바 고등학교 교육을 평준화하자는 데 목적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 경우, 여기에서 지향하는 평준화의 내용이 세칭 1류 교를 없애고 모든 학교를 2류화 내지는 3류화하는 저질로의 악평준화가 되어서는 안된다 함은 이미 본란에서 누차 지적한 바와 같다. 고교의 평준화는 모든 학교를 소위 1류 학교화하는 상향적 평준화가 되어야 비로소 그 뜻이 있기 때문이다.
상향적 평준화가 상을 거두려면 지금까지의 소위 1류 학교에 대한 계속 지원유지는 물론이거니와 그렇지 못한 2류·3류 학교를 1류 학교 수준으로 중점지원, 교육시설의 대폭적인 보완과 그리고 우수한 교원의 확보 대책 등 제반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현실적 여건이 갖춰지기 전에 새 제도의 도입이 먼저 앞질렀기 때문에 앞으로 이에서 오는 부작용과 분규가 없기 어렵다.
종전까지의 고교입시 제도에서는 적어도 노력하는 자, 실력 있는 자는 1류 교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일관된 명분이 있었다. 그러나 평준화의 전제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학교배정이 추첨의 우연으로 결정된다면, 범용한 학생이 공동학군 안의 1류 교에 들어가고 우수한 학생이 오히려 2류 학교에 배정되어 오랫동안 불만을 축적시키는 불공평과 부조리도 낳게 될 것이다. 그것이 전반적으로 이 나라 젊은이들의 면학사기에 마이너스의 영향을 끼치게 된다면 국가장래를 위하여 불행한 일이다.
따라서 학군을 확정 시켰다고 해서 이제 모든 문제가 해결 된 것으로 안다면 큰 일이다. 제도 개혁의 본래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학교시설의 개선, 또는 교사의 인사교류 등을 철저히 촉구, 실행에 옮겨 놓도록 이제부터 발벗고 나서야 할 것이다. 학군제실험 의 성패는 실로 여기에서 판가름된다.
한편 이미 모집을 끝낸 서울의 전기 고등학교에서는 3만 8천 9백 여명의 불합격자를 냈고, 앞으로 있을 인문 고등학교에서는 이들 전기 고교에서의 불합격자까지 포함한 8만 여명이 지원하게 되면 결국 3만 2천 2백 80명의 불합격자를 낳게 한 것이다.
부산에서도 역시 전·후기 모집이 끝나면 9천 5백 45명이 불합격으로 남게 될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서울·부산을 합친 숫자만 하더라도 금년 고교진학에 4만천8백 여명이 탈락하는 결과가 된다. 그것은 전체 고교진학 희망자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문교 당국으로서는 이들 탈락자를 방송통신 고교와 전수학교, 또는 사회교육 기관에서 수학케 할 방침이라 하나 과연 모든 당사자나 학부모들이 그러한 방침에 순응할지가 의문일 뿐더러 그것이 교육 정책상 바람직스러운 것인가 하는 데에도 문제가 있다.
중학교만 이수해 가지고서는 사실상 어엿한 직장인으로 자리잡기 어려운 것이 오늘의 사회현실이요, 선진국에서는 고등학교까지가 이미 의무교육으로 되어 있고, 그것이 또한 우리들의 지향할 바라 한다면 고교진학에서 이처럼 큰 비율의 탈락자를 내어 이들을 방치해서 괜찮을지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고교학급수의 증가가 아무래도 시급하다 아니할 수 없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