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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분쟁 무력 해결의 관례화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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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파라셀」군도는 중공의 해남도와 월남 해안으로부터 각각 약 3백km정도 떨어져 있는 50여개의 산호도로 이루어져 있다.
이 군도는 식물도 자라지 못하며 다만 분화석(구아노)과 인이 약간 매장되어 있다. 따라서 이 군도는 어부들의 피난처와 옛날 해적들의 은신처로 이용되었을 뿐 영토로서의 가치는 별로 없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 섬에서 발견된 인은 이 근해에 상당량의 석유매장량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유추를 자아냄으로써 이 군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다.
중공은 이미 이 지역의 해상 석유 탐사를 위한 장비를 외국에서 발주할 계획인 것으로 보도되었다.
「파라셀」군도에 대한 중공과 대만측의 영유권 주장은 그 기원이 한대(기원전 206년∼서기 220년)에까지 소급한다고 하며 반면 월남측은 월남 제국연보를 인용해서 이 군도가 19세기 초 「지아·롱」황제의 선원들에게 발견되어 1802년 황제 자신이 이 군도를 방문해서 분화석을 이용해서 비료를 제고하는 국영회사를 설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공은 이 섬을 지사로 명명한 반면 월남은 장사라고 부르고 있다.
19세기 초 「프랑스」가 점령했던 이 군도는 39년 일본이 다시 점령했다. 51년 「샌프런시스코」평화조약이 조인될 때 이 군도는 다시 장개석 총통의 대만 정부에 넘겨졌었다.
대만 외교부는 분쟁중인 「파라셀」뿐만 아니라 「스프래틀리」(남사) 「프라타스」(동사) 「매클즈필드」(중사) 등 4개 군도가 중화민국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월남측은 이 회의에서 월남 대표가 「파라셀」에 대한 영유권 회복 선언을 했으며 이 때 어느 대표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월남측에서는 또 32년부터 월남군 수비대와 기상 관측소를 유지해왔다는 사실로 그들의 영유권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번 분쟁은 일단 중공의 무력으로 결정지어졌는데 중공이 분쟁중인 해역을 이런 방안으로 해결하는 선례를 남겼다는 사실은 황해의 제7광구에 대해 우리 나라도 중공과 이견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볼 때 우려되는 바가 있다.
중공은 지난 73년3월16일 한국정부가 제의한 대륙붕 분할선 확정협의 제안에 아직까지 아무런 반응도 보이고 있자 않으면서 미국과 일본의 석유회사에 대해 한국해저 유전 개발 사업에 참여하지 않도록 간접적인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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