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소 반 체재 작가「솔제니친」의 신 작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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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편집자주=소련의 비밀 경찰과 감옥·수용소등에 관한 「알렉산드르·솔제니친」의 역사적인 소설 『「굴라그」군도 1918∼1956』이 구랍28일 「파리」에서 로어로 출판되었다. 다음은 「뉴요크·타임스」가 발췌, 게재한 영역분을 수회에 걸쳐 제공하는 제1회분임.
【워싱턴 1일 동양】『모든 것을 말할 수 있을 만큼 오래 살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원컨대 그들은 내가 그 모든 것을 다 보지 못하고 다 기억하지 못하고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미리 알지 못했던 것을 용서해 주기 바란다.

<생자에 대한 의무로>
지난 수년동안 나는 속으론 그러고 싶지 않으면서도 이 책의 출판을 보류해 왔었다.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에 대한 나의 의무가 죽은 사람들에 대한 나의 의무보다 더 무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련 비밀 경찰이 최근 이 책의 사본 하나를 압수해 간 이상 나로선 한시 바삐 이를 출판하는 도리밖엔 없게 되었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과 사건 치고 가공적인 것은 없다. 모든 인물과 장소는 실명 그대로가 쓰여졌다. 이름 전부가 밝혀지지 않고 두 문자로만 표시된 경우는 나의 개인적 배려 때문이다. 또 전혀 이름이 없는 인물이 등장했다면 이는 내 기억력이 그들의 이름을 기억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 속의 모든 사건은 여기 묘사된 그대로 에누리없이 발생했던 것들이다.

<빙하 속 선사 도마 뱀>
1949년 몇몇 친구와 나는 소련 과학원 기관지「프리로다」(자연)에서 어떤 「뉴스」기사 하나를 읽었다. 편지 형식의 이 기사에 의하면 「콜리마」강의 빙판 발굴도중 고대 개천이 결빙된 지하 「아이스·렌즈」가 발견되었고 이 얼음덩이 속에는 수천 수만년 전 선사시대의 동물 수종이 결빙 상태로 들어있었다는 것이다.
물고기인지 도마뱀인지 모를 이들 선사시대의 동물들은 냉동상태에서 하도 잘 보존돼 있었기 때문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즉시 얼음을 깨고 그것들을 꺼내고 자리에서 즐겁게 먹어치웠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기사를 읽는 즉시 모든 것을 이해했다. 그 장면의 아주 미세한 부문까지도 우리는 상상할 수 있었다. 그걸 캐낸 사람들이 부랴부랴 얼음을 깨는 장면이라든가 어류 학자들의 고상한 관심을 비웃기나 하듯이 서로 다투어 이 선사시대의 물고기들을 모닥불 옆으로 들고 가 얼음을 녹이고 그 고기를 뜯어먹는 장면이며 우리는 이해할 수가 있었다.
사실 우리가 모든 걸 재빨리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역시 사건의 현장에 있었던 자들과 같은 족속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역시 이 지구상의 힘세고 유일한 종속인 「제크」족(수용소 재소자들) 출신이었으며 이 족속이야말로 선사시대의 도마뱀들을 즐겁게 먹어치울 수 있는 유일한 종족인 것이다.

<수인만이 아는 비밀>
「콜리마」로 말하면 「굴라그」(소련 강제 노동수용소 체제)라는 놀라운 나라에서도 가장 크고 가장 유명하고 가장 지독한 섬이었다. 「굴라그」는 지리상으로는 여러 섬이 산재한 군도지만 심리적으로 말한다면 아무도 들여다 볼 수 없는 하나의 대륙이었다. 그리고 거기 사는 족속이 「제크」족 이었다.
이 군도는 마치 장기판의 얼룩무늬처럼 온 나라에 걸쳐 퍼져 있었다. 그것은 도시의 한 복판에도 동굴을 만들고 거리거리를 배회하고 있었지만 그런 것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고 오직 그 안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들만이 모든 진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이 군도의 역사를 들먹거릴 엄두를 낼 순 없다. 그 군도의 모든 서류들을 읽어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장차 언젠가 그 모든 문서들을 누군가가 읽어보게 될 것인가? 사실 그 기억을 되살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이미 그들이 가진 문서들을 마지막 한 장 남김없이 모조리 없애 버렸고 앞으로도 사정은 마찬가지 일 것이다.
내가 그 군도에서 보낸 11년의 세월을 나는 내 체내에 흡수했다. 그러나 그것이 수치스럽다거나 저주스런 악몽으로 흡수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어쩌면 이 일그러진 세계를 사랑하게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 와서 오히려 전화위복이랄까, 나는 많은 새로운 이야기와 편지들을 얻게 되었다.
이 책은 어떤 한 사람의 힘으로는 결코 씌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에는 나 자신이 내 살갗과 마음의 눈으로 그 군도에서 겪고 얻은 것 말고도 2백27명의 다른 사람들이 제공한 이야기와 회고와 편지 속의 자료들이 들어있다.
그러나 아직은 내가 이들의 이름을 밝힐 때가 아니다.
앞으로 먼 후일에까지도 이 땅에 자유가 오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이 책을 이 손에서 저 손으로 돌려가며 읽는다는 것도 매우 위험한 일이 될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미래의 독자들에게도 인사를 드려두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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