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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의 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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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 총리 치사서 첫 거론>
「체제」-이희승 지음 국어대사전에는『사회를 하나의 유기체에 비하여 볼 때 그 조직의 양식·사회조직』또는『주권자·단체·세력등이 지배하는 상태』라고 돼 있다.
「체제」에 관한 거론은 지난13일 전 대학 총·학장회의에서 김종필 총재가 처음했다. 김 총재는 치사에서『학생들이 체제에 대해 운위하는 것은 지나친 언행이며 학생운동이 반체제운동으로 발전된다면 중대사태로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김 총리는 반체제가 있을 수 없다는 이유를『우리는 북쪽에 휴전선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세계에서 가장 악질적인 북한 공산주의자와 대치하고 있어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상황 때문에 그로 인한 제약이 학술이나 언론·정치 등 많은 분야에 가해지고 있는 실정』으로 설명했다.
김 총리는 이날 이후 언론계·종교계·경제계 인사들과 만날 때마다 반체제는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했고 종교인 모임은 「체제」에 관해 의견을 달리했다.
「카톨릭」의 김수환 추기경은 지난 16일 교회와 인권협회연합 예배에서『국민의 인권과 민권에 대한 요청을 제도적으로 확립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국정참여를 제도적으로 소외하는 현재체제를 지양하고 현 헌법을 개정하여 주권재민의 민주체제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말하고『이런 주장을 반체제로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했다.
김재준 목사는 18일 예술극장에서 열린 통일당 전당대회에서 강연을 하는 중에『자유민주주의가 우리 본 체제이므로 민주회복을 요구하는 것은 반체제가 아니다』고 했다.
개헌문제는 이런 논란에 앞서 대학의 학생「데모」때 더러 나오기도 했었다.

<개헌「터치」안했던 시민>
야당에서는 그동안 정법이나「해제」문제는 거의「터치」하지 않아 왔으며 안 하려고 노력하는 기미마저 있었다.
정부 쪽에서 최근 반체제언동의 불허를 강조할 때는 입을 다물었던 신민당이 20일 유정회의 결의가 있는 반론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유정회는『최근 사회일각에서 일어나고 있는 유신체제에 대한 비판의 소리와 움직임을 우리는 경청하고 중요시하며 이것이 만약 반체제적인 의도나 목적에서 계속된다면 좌시할 수 없는 사태로 판단한다』고 의원총회에서 결의한 것.
이 결의문이 채택된 후 백두진 유정회 회장은「반체제」언동이란『개헌을 해서 옛날 체제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야당선 공개토론을 제의>
이같은 백 회장의 말과 유정회의 결의는「체제론」을 가속화하는 결과를 가져와 신민당은 『모든 헌법은 고칠 수 있고 국민의사에 따라 고쳐져야 한다』고 했고, 통일당에서는「유신체제」와「반체제적인 것」에 대한 공개토론을 제의했다.
신민당의 채문식 대변인과 박한상 인권옹호위원장은『헌법을 불가침의 영역으로 삼는 것은 세계에 유례없는 것이며 현 헌법에 개정절차를 명시한 것은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개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신민당은 당장 헌법을 고치거나 체제를 바꾸도록 요구한 일이 없다.
유진산 총재는 어느 방송국과의 대담에서『평화적 정권교체가 가능한가』라는 물음에『그것은 박대통령의 결단여하에 달렸다. 그러나 이 문제를 헌법개정에 결부시킨 것은 아직 이르다』고 소견을 말한 일이 있다.
이민우 원내총무의 얘기로는 지난 12일 회견 때 개헌문제를 거론하려다 연초회견 때로 미뤘다고 했다.

<여 일부 "논쟁" 이롭지 않다.>
「체제」논쟁이「에스컬레이트」되자 여당 측에서는『체제논쟁을 벌여 이로운 것이 없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유정회의 한 고위간부는『당분간 헌법을 고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몰라도 반체제언동은 불허한다는 얘기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공화당과 유정회는「체제논쟁」에 대비하여 야당과 일부의 비판을 반박할 자료를 준비했었으나 이런 내부비판 때문에 보류했다.
「체제」의 정의가 뭐냐는 여당의원의 자문에서 여당측의 혼선이 짐작된다.

<정치학사전의「체제」정의>
어느 정치학사전의「체제」를 보면-.
『모든 사회현상의 근본원리에 의해 통일되고 질서 지어지는 것. 인간의 사회생활은 역사적으로 생성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사회 현상에 일의적 규정성을 주는 근본원리도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고 역사적으로 다른 것이다.
예컨대 봉건체제·자본주의체제·사회주의체제라 할 때처럼, 인간의 역사는 시간적으로 몇 개의 통일체에 구분된다. 이 통일체는 각기 역사적으로 다른 하나의 근본원리에 의해 질서가 이루어진다. 즉 봉건체제에 있어서는 신분이, 자본주의해제에 있어서는 자본이, 사회주의체제에 있어서는 근로가 사회생활의 지배적인 원리가 돼 있다.
이들 체제의 내부에 있어서는 정치·경제·법·도덕·종교 등 인간의 사회생활의 모든 면이 이 규제원리에 의해 질서가 이루어져 상호 연관을 갖는다. 따라서 체제란 국가·국민·민족 등 인류의 집단이 역사적으로 자기를 형성해 나가는 가장 근본적인 사회태도라고 할 수 있다.
체제는 어떤 시대의 양식과는 따르다. 양식은 인간의 문화의 존재방식에 관한 것인데, 체제는 인문의 사회생활 그 자체의 존재방식에 관한 것. 또 체제는 역사의 단계나 국면이나 상황과 다르다. 이들은 단지 한 체제간의 한 시기를 나타내는 것에 불과하다.
체제를 말할 때, 체제의 근본원리를 인식하는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한 체제의 내부에 있어 모든 사회현상이 어떻게 상호 연관돼 있느냐는 문제와 한 체제와 다른 체제가 어떻게 상호 연관돼 있느냐는 문제가 중요하다. <조남조·허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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