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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내 부모 재산을 의붓형제가 거의 다 가져가게 된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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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선희
양선희 기자 중앙일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양선희
논설위원

몇 해 전, 한 지인에게서 들은 하소연이다. 지방에 혼자 살던 할머니(80대)가 연하 남성과 결혼하겠다고 통보하는 바람에 시쳇말로 온 집안이 뒤집어졌다는 것이다. 할머니 입장에선 인생 말년에 찾아온 로맨스에 인간승리 같은 행복을 느꼈을 텐데 가족들은 그렇지 않았다. 이 소란의 연유 중 큰 부분은 할머니가 가진 적지 않은 재산 때문이었다. 그 후 결론은 듣지 못했지만, 이 결혼을 막는 과정에 곱지 못한 장면들이 연출됐었다.

 최근 배우자 상속 지분을 대폭 늘리는 민법개정안(상속인의 자녀가 한 명이면 배우자에게 80%, 두 명이면 72%가 돌아간다)이 추진되는 것을 보며 이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자녀들이 부모를 부양하는 풍속이 사라지는 세태에 생존 배우자의 생활안정을 위한 ‘선한 명분’으로 추진되는 법을 놓고 무슨 속물 같은 생각이냐고 따져도 할 말은 없다. 선의에 반기를 드는 건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 법이 현실과 세태를 충분히 고민한 것인지에 고개가 갸웃해지고 불온한 상상으로 달려가는 건 어쩔 수 없다. 물론 부부 백년해로하고, 부부·직계자녀로 구성된 가족이라면 별 생각할 거리도 없다. 원래 상속법은 재산 많지 않고 화목한 집안엔 있으나 마나 한 법이다. 상속문제에 법이 거론될 때는 원래부터 분쟁의 불씨를 안고 있는 경우가 많고, 상속 분쟁이 시작되면 가족은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는 게 현실이다.

 게다가 작금은 가족해체기다. 황혼이혼이 신혼이혼을 웃돌고, 자녀 있는 남녀의 재결합이 왕성하다. 한데 남녀의 결합은 우리의 꿈처럼 숭고하게 유지되지도 않고, 결혼은 재산문제로 얽힌다. 예를 들어 자녀 있는 남녀가 재혼을 했는데 한쪽 배우자가 사망했다고 치자. 사망 배우자의 자녀는 재산 20%만 받고 생존 배우자가 나머지를 갖는다. 그리고 훗날 이 재산은 자기 자녀, 원 재산 소유자의 의붓자녀에게 고스란히 상속된다. 합법적이지만 직계자녀가 정서적으로 용납하는 건 다른 문제다. 사람은 정서상 용납이 안 되면 상황을 역행해서라도 정서에 부합하는 상황으로 만들려고 하기 때문에 생각도 못한 새로운 사회문제를 만들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개정되는 상속법이 분쟁과 불화를 제대로 조정할 수 있을지, 노년의 또 다른 ‘복지’인 로맨스를 방해하진 않을지 걱정이다.

 좀 다른 얘기지만, 국가경제적으로 내수 진작이 중요한 때에 젊은이들보다 노인에게 재화가 쏠리는 게 경제 발전에 바람직한 것일까. 나이가 들수록 돈 쓸 일은 제한적이어서 소비 기능은 많이 떨어진다. 노년 생활안정은 달성하고 소비 활성화를 놓치면 젊은 세대의 삶은 더 팍팍해질 텐데. 명분이 좋다고 결과도 좋은 건 아닌 상황을 하도 많이 보다 보니 괜한 걱정이 앞선다. 어쨌든 세태에 대한 고민을 좀 더 섬세하게 해보는 게 좋을 듯하다.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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