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농밀한 연주! 마치 현에 꿀을 바른 듯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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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호 27면

헝가리 출신의 바이올린 연주자 요한나 마르치. 은퇴 후 잊혔다가 최근 들어 재조명되고 있다. [사진 EMI]

짧은 콧수염을 보기 좋게 기른 중년 남자가 바이올린을 들고 좁은 실내에 들어왔다. 그는 앉아있는 세 사람의 손님과 가벼운 눈인사를 마치고 바로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연주를 시작했다. 완벽한 조율, 유려한 소리를 끌어내는 능숙한 기교. 연주는 내가 그때까지 들어본 적 없던 가장 화려한 파르티타였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 독주곡 연주를 무대에서 만나기란 쉽지 않다. 생각지도 못했던 장소에서 최상의 바흐 곡 연주와 만나다니! 나는 잠시 꿈꾸는 것 같았다.

[음악, 나의 동경 나의 위안] 바이올린의 여신, 요한나 마르치

그곳은 크렘린 근처에 있는 러시아 전통식당의 작은 밀실이었다. 2005년도에 러시아에 갔을 때 친분 있던 한국대사관 인사가 우리를 그곳에 안내한 것이다. 연주가 끝나자 나는 허둥지둥 주머니를 뒤져 50달러 지폐 한 장을 꺼내 황홀한 파르티타를 들려준 그 악사, 아니 연주자에게 공손하게 건넸다. 만약 그때 100달러가 손에 잡혔다면 나는 100달러를 그에게 건넸을 것이다. 악사가 사례를 하고 나가자 우리를 초대했던 대사관 무관이 벌컥 화를 냈다. ‘2달러면 족한데 그게 무슨 만용이냐?’ 그는 좀처럼 분노를 거두지 않았다. 당시 음악원 교수 보수가 월 100달러 미만이던 걸 감안하면 무관이 내게 화낸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처럼 숭고한 음악을 이처럼 완벽한 연주로 듣고 어떻게 2달러를 내밀 것인가? 갑자기 허세 부리는 촌뜨기가 된 나는 그 무관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사회주의 몰락 이후 국가보호를 받던 예술가들이 생계가 어려워져 그런 곳에 더러 나온다는 얘길 뒤에 들었다.

그날 이후 이 바이올린 독주곡 연주로 두 번째 나를 매혹시킨 사람이 헝가리 출신 요한나 마르치(Johanna Martzy, 1924~1979)다. 그의 특징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보기에 즐거울 뿐 아니라 듣기에도 즐겁다’는 말이 적절하다. 무슨 뜻이냐 하면 바이올린을 약간 높게 치켜들고 허공을 응시하는 자태가 우아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그 모습은 그가 연주하는 바흐 곡들의 지향점과도 썩 잘 어울린다. 바이올린의 여신, 혹은 여사제란 말이 마르치의 이름 앞에 가끔 등장하기도 한다. 연주성향으로 봐도 강한 남성성을 지향하는 지네트 느뵈나 열정 발산형인 이다 헨델보다는 절제와 따뜻하고 온건한 중용의 연주를 들려주는 마르치에게 그 호칭이 더 어울린다.

선율악기인 바이올린을 대위법적으로 다루어 풍부한 화성을 연출함으로써 바이올린 곡의 새 지평을 열어준 이 독주곡은 현대에 와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단순한 대위법의 전시에 그치지 않고 2성, 3성으로 표현되는 신선한 선율은 자유분방한 정신의 유영으로 펼쳐지며 굳어지고 고착된 무딘 감각을 일깨운다. 그리고 2번 파르티타의 샤콘(Ciaccona)에서 그 절정에 다다른다. 샤콘은 바이올린 역사의 정점이며 한 손으로 잡아도 가볍게 쥐어지는 이 작은 악기가 이처럼 장려한 세계를 묘파해 낸다는 것은 기적을 보는 것 같다. 이 샤콘을 처음 들었을 때 진땀이 나고 마치 그것이 들리던 15분 동안에 삶의 힘겨운 회랑을 거쳐온 것 같은 깊고도 융숭한 감회에 젖게 되어 스스로도 놀랐다. 이 회랑에서는 갈등하고 환희를 느끼고 좌절하고 다시 재기하는 삶의 생생한 역정이 배면에 깔려 있다.

요한나 마르치는 외면적 평가보다는 수집가들과 청중의 선호를 받는 점에서 가령 시게티나 하이페츠, 밀스타인 등 이 곡 연주로 높은 평가와 함께 권위의 반열에 오른 인물들과 대조가 된다. 이들은 경향성을 대표하는 연주자들인데 마르치는 이 경향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류의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앞에 열거한 이들에 비해 도리어 마르치 는 표정이 더욱 풍부하고 따뜻한 숨결을 불어넣어 체온이 느껴지는 연주를 들려준다는 점에서 나는 마르치의 연주에 더욱 끌린다. 바흐 곡은 자칫하면 조형미에 충실하다는 이유로 기계적이고 건조한 연주가 되기 쉽다.

요한나 마르치는 모차르트 협주곡에서 그 면모가 더 쉽게 드러난다. 명연으로 평가되는 협주곡 4번, 그 유려함과 정밀성, 충실한 비브라토에 의한 농밀한 발성, 마치 현에 꿀을 발라놓은 것 같은 소리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모노시대 녹음만 아니면 더욱 화사할 것이다. 이것은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완벽한 연주다. 결코 고도기교는 내세우지 않지만 그의 연주는 마음을 사로잡는 특별한 매력으로 가득하다. 그가 바이올린 연주의 궁극에 도달해 있다는 말이 과찬이 아니다.

헝가리의 시골 소녀 요한나 마르치 - 어릴 때는 Jansci(욘시)라는 아명으로 불렸다 - 의 교육과정은 흥미롭다. 그는 몇 차례의 바이올린 레슨 외에 별다른 학교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그의 연주가 칼 플래쉬(Carl Flesh, 1873~1944)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시게티, 이다 헨델 등 칼 플래쉬의 쟁쟁한 제자들과 달리 그가 동족인 이 바이올린 명조련사에게 직접 배웠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추측하건대 그는 혼자 모든 것을 흡수하고 자신의 영혼을 그 음악에 실어 쉽게 흉내내기 어려운 독특하고 완전한 연주를 만들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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