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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선거사건, 참여재판에서 뺄 필요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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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법무부가 최근 국민참여재판 대상에서 선거사건을 배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시인 안도현씨 등에 대한 참여재판에서 무죄 평결이 내려진 뒤 “선거사건이 참여재판 대상으로 적절하냐”는 비판이 불거진 것과 무관치 않다. 이에 대해 “재판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란 시각과 “참여재판의 취지를 퇴색시킬 수 있다”는 반론이 부딪히고 있다. 두 갈래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선거범죄 정당화·결과 불복에 악용될 수 있다

오경식
국립 강릉원주대
법학과 교수

국민참여재판은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신뢰를 높이기 위해 2008년 도입된 제도다. 처음에는 대상 사건을 강력범죄로 한정해 조심스럽게 제도를 시행했다. 지난 6년간 시행한 결과 일부 보완해야 할 점은 있으나 이제 국민참여재판의 확대와 제도 도입에 적극성을 보일 시점이 되었다.

 참여재판의 성공을 위해서는 공정성 확보가 중요하다.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 후보에 대한 허위 사실을 퍼뜨린 혐의로 기소돼 전주지법에서 참여재판을 받은 시인 안도현씨에게 배심원 7명이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을 내렸으나 선고 기일 연기 후 결국 재판부가 유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배심원 평결이 지역 여론의 영향을 받은 것 아니냐”는 등의 지적이 제기되었다.

 지난해 12월 법무부는 국민참여재판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재판의 공정성과 신뢰성 제고를 위해 범죄의 성질, 기타 사정으로 참여재판으로 진행하는 것이 불공평한 판단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을 배제결정 사유에 추가하고, 참여재판 대상을 법원조직법상 법관 3명으로 구성된 합의부가 심리하는 사건으로 한정하는 등의 내용이었다. 이 경우 당선인 매수·투표 위조 등 일부를 제외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대부분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법무부는 “법정형이 무거운 사건을 참여재판으로 하기 위한 취지”라며 “선거 사건을 염두에 둔 내용은 아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국민사법참여위원회의 결정사항을 법무부가 변경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대상 범죄를 변경하는 것이 문제인가. 아니면 국민사법참여위원회의 최종결정을 법무부가 변경한 것이 문제인가. 선거범죄 등 정치적 사건에 대한 참여재판은 배심원 개인의 주관적 정치성향에 따라 동일 사안에 대해 지역별로 평결이 달라질 개연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공정성·신뢰성 문제로 참여재판 제도의 안정적 운용 자체가 어려워질 뿐 아니라 자칫 참여재판이 선거범죄를 정당화하거나 선거결과에 불복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

 2012년 7월 법 개정 당시 합의부 관할 중 징역 1년 이상 사건만 대상범죄로 하는 법안(이정현 의원안)이 발의되었으나 국회 법사위 심사과정에서 ‘다른 법률에 따른 합의부 관할 사건’까지 추가하는 의견을 냈고 그 ‘다른 법률’에 무엇이 있는지 별다른 논의 없이 법안이 통과되었다. 이에 따라 공직선거법 위반죄는 물론 유·무죄 및 양형 판단과 전혀 관계없는 치료감호법 사건까지 참여재판 대상이 되는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 만큼 수정은 당연히 필요하다.

 외국에서도 죄명이 아닌 법정형을 기준으로 대상을 정한다. 미국은 중죄(징역 6월 이상), 프랑스는 무기 또는 10년 이상 징역 범죄, 독일은 2년 이상 징역 범죄, 일본은 사형 또는 무기징역 범죄에 대해 배심·참심 재판이 진행된다.

 대법원 산하 국민사법참여위원회가 지난해 3월 최종안을 의결해 대법원에 보고한 것은 사실이다. 위원회 의견을 존중해야 하겠으나 위원회 안을 입법예고한 뒤 새로운 법 개정 필요성이 발생했다면 새 개정안을 제출할 수 있는 것이다. 추가 개정안 제출은 불가능하다는 식의 논리는 부적절하다. 참여재판 제도는 이제 우리 사회에 정착되어야 할 제도이나 아직 완전한 형태라 할 순 없다. 그 제도적 허점은 계속 보완해 나가야 한다.

오경식 국립 강릉원주대 법학과 교수

불공정 우려, 관할 이전으로 해소할 수 있다

신동운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08년부터 국민참여재판이 실시되고 있다. 우리 사법사상 처음으로 국민이 배심원으로 법정에 앉아 재판 과정을 지켜보고 유·무죄와 양형에 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국회는 참여재판을 성공적이라고 평가해 2012년 7월부터 대상 사건을 모든 합의부 사건으로 확대했다.

 새로운 제도 도입에는 시행착오의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이에 국민참여재판법 제55조는 대법원 산하에 국민사법참여위원회를 설치해 참여재판의 최종 형태를 결정하도록 했다. 2012년 7월 법원·검찰·변호사·학계·시민단체·언론계 등의 전문가들로 위원회가 구성됐고, 지난해 3월 5년간의 시행 경과를 토대로 참여재판의 최종 형태를 대법원장에게 건의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참여재판법 개정안은 국민사법참여위원회에서 의결한 참여재판의 최종형태와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위원회는 강제주의를 일부 채택해 법원의 직권 또는 검사의 신청에 의해 참여재판을 실시할 수 있도록 했다. 반면 입법예고안은 법원의 직권회부 권한을 삭제하고 검사에게만 참여재판 신청권을 인정했다. 아울러 검사에게 참여재판 배제신청권을 새로이 부여했다.

 이렇게 검사의 권한을 강화하고 법원의 권한을 축소하는 입법예고를 하면서 법무부는 국민사법참여위원회 등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했다는 설명을 제시하고 있다. 위원회에는 이미 법무부와 검찰 측 인사가 위원으로 참여해 의견을 개진했고, 위원회의 최종안은 위원들 사이에서 충분한 토론을 거쳐 결정된 것이다. 참여재판법에 근거해 국민사법참여위원회가 결정한 최종 형태를 단순한 의견 수렴 정도로 치부해 버리는 법무부의 태도는 국회가 제정한 법률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입법예고안에는 선거사범에 대한 참여재판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장치라는 규정이 새롭게 추가돼 있다. 안에 따르면 대부분의 선거 범죄가 참여재판 대상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이는 참여재판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선거사범에 대한 참여재판을 배제하려면 형(刑)의 경중을 묻지 않고 모든 선거범죄를 합의부에서 재판하도록 한 공직선거법 제269조부터 개정해야 한다.

선거사범에 대한 참여재판의 결과를 놓고 감성재판 우려가 현실화됐다는 비판이 있는 게 사실이다. 법무부 입법예고안도 이를 염두에 두고 검사에게 참여재판 배제 신청권을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시각은 잘못된 것이다. 형사소송법 제15조는 지방의 민심 등 재판의 공평을 유지하기 어려운 염려가 있을 때 검사로 하여금 반드시 상급 법원에 관할지정을 신청하도록 하고 있다. 불공정한 재판의 우려는 참여재판만의 탓으로 돌릴 것이 아닌 것이다. 광주 법정관리 비리 사건에서 보듯 재판지 변경을 의무화한 형소법에 따라 해결할 일이다.

 이번 법무부 입법예고안은 검찰 개혁과 관련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법무부는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신뢰 제고를 위해 마련된 참여재판제도를 후퇴시켜서는 안 된다. 국민사법참여위원회가 참여재판의 최종 형태를 결정한 것은 국회 입법에 따른 것이다. 참여재판 대상을 제한하고 회부권을 검찰에 독점시킨 법무부의 안은 외부로부터의 검찰 개혁이 왜 필요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국회의 신중한 심의를 기대한다.

신동운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