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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私財 460억 들여 자연사박물관 지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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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재산이 많아도 짊어지고 갈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게다가 주위 사람의 도움으로 번 돈이니까 당연히 사회에 돌려줘야죠."

모든 재산 4백61억원을 들여 자연사박물관을 짓는 80대 의사가 있다. 대전시 중구 대흥동에 있는 이안과병원의 이기석(李紀奭.80) 이사장이다. 지난달 충남 공주시 반포면 계룡산 자락에서 자연사박물관을 착공했다.

내년 8월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는 연면적 3천6백여평 규모의 이 박물관에는 그가 50여년간 모은 자연사 관련 소장품 20만1천여점이 전시될 예정이다.

이 가운데는 2년 전 미국 와이오밍주에서 발굴된 초식공룡 브라키오사우루스의 화석을 비롯해 각종 동.식물, 천연기념물만도 1백38종이나 된다. 이쯤되면 李이사장의 수집벽이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이 간다.

그의 수집벽은 가난에서 출발했다. 충남 청양군 운곡면 칠갑산 골짜기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李이사장은 '찢어지게 가난한' 가정형편 탓에 어려서부터 버려진 물건들을 꼼꼼히 살피고 쓸 만한 것이면 집으로 가져오는 버릇이 들었다고 한다.

23세 때 의사가 되고 경제적 여유가 생긴 뒤에도 그의 이런 버릇은 사라지지 않았다. 더 이상 생필품이 관심은 아니었지만 뭔가를 계속해 모으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각종 동물 박제에서부터 식물 표본까지 닥치는 대로 사들였다.

그의 취미를 안 전국 각지의 상인들이 희귀한 물건을 구하면 "살 생각이 없느냐"며 먼저 의사를 타진해 왔을 정도다.

소장품들이 쌓여가자 李이사장은 분류를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사적으로 학습가치가 있는 소장품들만 해도 자운석.화석.암석.산호.패류.곤충.조류.포유류.파충류.어류.식물.갑각류 등 12종류나 됐다. 그때 떠오른 생각이 바로 박물관 건립이다.

"보관 장소가 마땅치 않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는 1997년 충남도가 민간자본을 유치해 자연사박물관 건립을 추진하자 '청운문화재단'을 만들어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수집과 박물관 건립으로 바쁜 와중에도 李이사장이 거르지 않는 것이 또 있다. 그는 56년 병원을 세운 이후 지금까지 오지 주민 1만여명을 무료로 진료했고 앞을 못보는 불우이웃 2천여명에겐 개안 수술을 해주었다.

지금도 젊은 의사 못지 않게 열성적으로 환자를 돌보고 있는 李이사장은 "모두 내가 좋아서 한 일일뿐"이라면서도 "값진 유산을 후손에게 고스란히 물려줄 수 있게 된 점이 한없이 기쁘다"며 활짝 웃었다.

대전=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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