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무실…「스크린·코터」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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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 2월 공포된 개정 영화 법이 국산영화의 보호육성을 위해「스크린·코터」제를 적용, 『공연자는 년간 영화상영 일수의 3분의2를 초과하여 외국영화를 상영할 수 없다』(26조)고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검열을 끝낸 29편의 국산영화가 몇 달 동안 방치되고 있는가하면 전국 60여 개봉극장은 계속 외화만 상영함으로써「스크린·코터」제 운용에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영화가의 연중 최고대목이라는 추석의 경우만 해도 예년에는 서울의 10여개 개봉관 중 4, 5개 극장은 국산영화를 상영했으나 금년에는 11개 개봉극장가운데 단 l개(국도)만이 국산영화를 상영키로 결정했을 뿐 나머지 10개 극장은 모두 외화상영을 준비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국이 당초 개정영화법에서 국산영화의 상영을 의무화한 것은 국산영화 시장의 폭을 보다 넓히고 외화 전문관에서도 국산영화를 상영케 함으로써 관객의 외화집중현상을 최대한 막아 보자는 데 뜻이 있는 것으로 이러한 규정을 보다 충분히 이행하도록 하기 위해 『문교부장관은 공연장이 26조의 규정을 위반했을 때 공연장의 허가청에 대해 영업정지처분을 요구할 수 있다』(30조1항)는 벌칙규정도 마련해놓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개정영화법이 발행된 지난 3월 이후 서울의 경우 국산영화전문개봉관인 2, 3개 극장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개봉극장들이 고작 1∼3편의 국산영화만을 상영했으며 그나마도 국산영화 1편의 평균 상영일수는 1주일 정도밖에 되지 않고 있다.
이들 극장들이「스크린·코터」제의 규정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연말까지 1백일동안 국산영화를 상영해야하는데 지금까지 1개월간 국산영화를 상영했다 하더라도 남은 4개월여에 최소한 2개월 이상은 국산영화를 상영해야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상황 속에서 그러한「스크린·코터」제 규정의 이행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극장측의 공통된 견해.
따라서 적어도 74년 초에 가면 수많은 극장들이 영업정지처분을 받아야하는데 실제로 그러한 사태가 일어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회의가 뒤따른다.
그렇다면 지켜지지도 않고 처벌도 받지 않는 「스크린·코터」제란 유명무실한 규정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1년에 4개월 이상 국산영화를 상영토록 한 고정영화법은 실제로 무리라』고 주장하는 극장측은 설혹 외화 전문관에서 국산영화를 상영한다해도 날짜를 채우기 위해 관객도 없이 무작정 끌고 나갈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면서 무엇보다 국산영화의 질적 수준 향상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내세우고있다.
이에 대해 제작자 측은 상반된 견해를 보이고있다. 즉 극장측이 국산영화를 평가하는 것은 흥행만을 고려한 지극히 피상적인 것이며 흥행성과만을 내세워 국산영화를 기피하는 한 국산영화의 발전은 조금도 기대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가령 검열까지 끝낸 29편의 국산영화를 극장이 상영기피 함으로써 최소한 30억원 이상의 영화자금이 무기한 사장되고 있으며 극장이 계속 외화 우선 정책만 고수한다면 영화자금의 사장화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게 될 것이라고 제작업계는 비관론을 펴고있는 것이다.
특히 추석「프로」의 경우「리바이벌」외화에도 3, 4면을 할애하면서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그 많은 국산영화에 눈을 돌리지 않는 것은 극장측의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제작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제작자와 극장간의 「스크린·코터」제 운용을 둘러싼 이 같은 불협화음은 최근 난항 끝에 정상업무를 시작한 영화배급협회의 활동여하에 따라 다소 누그러질 가능성도 보인다.
개정영화법에 따라 수입외화·국산영화 등 모든 영화의 국내배급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발족된 배급협회가「스크린·코터」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운용, 제작자와 극장의 상반된 이해의 폭을 최소한 좁히게되면 국산영화도 다소 숨통을 돌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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