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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의 우중포금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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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묵화 한 폭을 본다. 시원한 광경이다. 우중에 촌로가 거문고를 들고 간다. 다 해진 지우산을 펼쳐 든 모습은 오히려 삽상(풍상)한 느낌을 준다. 세속을 훌훌 떠나는 심경인 듯 유유하다. 우리의 옛 촌부들에겐 그런 해탈의 멋이 있었던 것 같다. 사람은 때때로 낙천적인 품성을 가질 만도 하다. 율곡의 우중포금도.
당시에도 이런 풍정에 넘친 표현이 있다. 낙양 시인 독고급(725∼77년)의 시. 방금 비가 갠 하늘이다. 시인은 명금을 들고 산에 오른다. 술잔을 기울인다. 『큰 뜻은 덧없는 세사에 쫓기어, 나아갈 수도 머무를 수도 없는 신세』로 만든 무상한 세월을 한탄한다. 세상은 어수선해서 관군이나 무사들은 갑옷을 걸치고 서성댄다. 시인은 세속을 아랑곳없이 유자의 옷을 걸치고 밭일이나 하며 취흥을 돋운다.
『…내 인생은 얼마나 남았을까. 태반은 근심에 싸여 보냈거늘. 고향을 떠나, 오늘 슬픔의 구름이 개자 비로소 알았네. 탁주는 과연 현자의 술이군.』
비단 시인만의 심회일까. 해탈의 경지는 동양인의 무변하고 깊은 심상이 아닌가도 생각된다. 율곡의 그림을 보며 새삼 그런 감회에 젖는다.
이조회화 전통 속에 문인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지만, 율곡의 그림은 좀 의외다. 도무지 그것을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새로 발견된 율곡의 묵화에 시선이 멈추는 것은 당연하다.
이조 회화는 전기(15, 16세기)와 후기(17, 18세기)로 나눌 수 있다. 전기는 이른바 북종화의 전성기이며, 후기엔 남종화가 등장했다.
후기에 우리 나라의 묵화가 화제에 있어서 중국화로부터 이탈하기 시작한 것은 흥미 있다. 그것은 회화사의 중요한 전기를 이룬다.
그 중에 직업적인 화가로는 겸제를 들 수 있다. 그는 송림이나 암석 등을 상상의 세계 속에서 그리는 것이 아니고 한국적인 풍경에서 스케치했다. 또 단원 같은 이는 서민생활의 정경 등을 그려 회화의 세계를 넓혔다. 그의 묵화 속에선 이조의 생기와 야성미가 엿보여 한층 감동을 자아낸다.
그러나 아마추어 화가에 견줄 문인화의 그림들도 한 경지를 이루고 있었다. 이들은 산수화보다도 사군자 등을 그리며 시화일치의 문기에 주력했다. 빳빳한 털로 맨 갈필을 가지고 탈속의 세계를 묘사한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높은 교양과 인품의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해동공자로 불리는 율곡도 그런 인격자이고 보면 묵화 한 폭쯤 없을 수 없다. 경세제민의 대 정치가인 율곡은 그 묵화에서도 대인의 품격을 돋보이게 한다.
『더러운 사나이가 벼슬을 얻었을 때는 그것을 잃을까봐 걱정한다. 참으로 벼슬을 잃을까봐 걱정하는 사람은 그 수단으로 무슨 짓이라도 한다.』율곡의 말이다.
우중포금도의 사나이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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