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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美 엔론과 닮은 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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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SK글로벌의 분식회계 사건이 미국 ‘엔론사태’처럼 증시에 장기간 충격을 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증권가에 커지고 있다. 상황이 여러모로 닮았기 때문이다.

미국 증시는 지난 2001년말 미 최대 에너지기업인 엔론이 대규모 분식회계를 저지른 사실이 밝혀지면서 휘청거렸고,10개월이 지난 뒤에야 회생했다.

◆가시밭길 미국 증시=미국 뉴욕증시의 S&P500 지수는 2001년 8월 1,200선까지 갔으나 9.11 테러 직후 투자심리가 위축되면서 960선까지 추락했다. 이후 기업실적호전.경기부양책 등으로 매수세가 살아나 오름세로 돌아섰으나 의외의 '복병'이 증시의 발목을 잡았다.

10월 말 엔론이 ▶이중 장부 작성 ▶제휴 업체와의 조작을 통한 실적 부풀리기 ▶부채 은폐 등의 방법으로 15억달러 규모의 분식회계를 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그 후폭풍이 일파만파로 퍼졌다. 한때 미국 7위의 거대기업이었던 엔론은 분식회계 파문이 일어난 지 한 달도 안돼 주식값이 1달러도 안되는 휴지 조각으로 전락했다.

회계부정 의혹은 지난해 여름까지 월드컴.제록스.머크 등 미 대표기업으로 번져 나갔고, 가뜩이나 경기침체 우려까지 제기되는 상황에서 투자심리가 꽁꽁 얼어붙어 S&P500지수는 7월 하순 790선까지 폭락했다.

결국 미 증시는 의회가 지난해 7월 말 부정회계 경영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기업구조조정법을 통과시키고 난 뒤 반등했고, 8월 중순 회계장부가 투명하다는 최고경영자(CEO)들의 서명 마감일이 지나면서 가까스로 주가가 회복될 수 있었다.

◆뒤통수 맞은 투자자들=국내외 증시전문가들은 엔론 파문이 98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가 파산위기에 몰렸을 때보다 더 큰 충격을 줬다고 전했다.

엔론 사태는 미국의 '소프트웨어'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자본주의의 꽃'으로 불리는 미국에서 대규모 회계부정 사건이 터지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철썩 같이 믿었던 기업 회계시스템과 투명성에 의문을 품게되고, 언제 '제2의 엔론'이 나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투자심리가 꺾이면서 주가가 하락했다.

또 회계정보에 대한 신뢰하락으로 기업 신용등급이 떨어지면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진 회사들이 연쇄도산했고, 신용위기 확산으로 금융기관은 대출을 꺼리는 악순환을 불렀다.

SK사태도 마찬가지다. 단기간에 굴지의 그룹으로 도약한 SK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는 컸다. 시가총액 2위를 달렸던 SK텔레콤은 한국 증시의 기대주였고, SK그룹 계열사들도 탄탄하고 유망한 주식으로 평가받았지만, 결국 SK글로벌의 분식회계로 투자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굿모닝신한증권 김학균 연구위원은 "투자자들은 생각지도 않은 돌팔매를 맞은 셈"이라며 "엔론사태처럼 장기적으로 증시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자산운용사 사장은 "검찰조사가 확대될 경우 파장이 더 커질 수 있다"며 "당초 예상보다 시장상황이 나빠진 만큼 정부가 분명한 처리지침을 내놓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동원증권 김세중 연구원은 "외국인투자자들이 12일 SK텔레콤과 일부 은행주를 샀다는 점에서 시장 전체의 위험상황으로 파급될 가능성은 작다"며 "현대그룹의 유동성 위기 당시 계열분리가 가속화돼 방화벽이 쳐졌던 것처럼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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