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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이 마을디자인, 성남 구도심 바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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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성남시 태평동은 1970년대 수도권 정비가 시작된 이후 서울 철거민들의 이주로 형성됐다. 산을 깎아 만든 부지를 이주민에게 소규모(66㎡)로 분양한 탓에 벽돌 건물 1500여 개가 빼곡히 들어섰다. 건물과 건물 사이 간격이 1m 남짓한 곳도 허다하다.

경기도 성남시가 태평동·수진동·신흥동·상대원동 등 집들이 낡은 구도심 일대에서 ‘주민 맞춤형 재개발’을 추진 중이다. 수백~수천 가구를 허무는 것이 아니라 2~3가구에서 많게는 10가구 안팎까지 묶어 재개발하는 방식이다. 시는 인접 도로와 주차장 같은 각종 필요 시설을 제공한다.

 23일 성남시에 따르면 시는 이런 방식으로 구도심을 재개발하기로 하고, 수정구 단대동 177번지 일대에서 시범사업을 벌이고 있다.

 소규모 맞춤형 재개발의 구체적인 방식은 이렇다. 일단 시가 대상 지역을 ‘주거환경관리사업지역’으로 지정한다. 그 뒤 주민들로부터 개발 계획을 제출받는다. 이웃끼리 대지를 합쳐 새 건물을 세우는 식이다. 시는 건축비 등 필요한 경비 일부를 지원한다. 또 녹지와 주민복지센터, 공용주차장 등을 조성해준다. 단대동에서는 주민들이 모두 담장을 허물도록 유도해 거기서 확보되는 공간만큼 녹지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성남시가 구도심에 대해 소규모 맞춤형 재개발을 추진하는 것은 대형 재개발이 무산된 데 따른 조치다. 성남시 구도심은 일부 지역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시행자가 돼 재개발을 추진했으나 부동산 경기가 꺼지면서 사업 중단을 선언하는 등 대형 재개발 사업들이 좌초됐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주민 맞춤형 재개발’을 꺼내 든 것이다. 서울에서는 암사동 ‘서원마을’과 마포 ‘염리마을공동체’가 비슷한 방식으로 재개발됐다. 그러나 서울 이외 지역에서 이 방식을 채택한 것은 성남시가 처음이다. 성남시 박채운(40) 도시정책팀장은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아 대형 재개발 정비사업은 추진이 어렵다는 판단 아래 실질적으로 주민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도시재생 방안을 찾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1년 ‘좋은 마을 만들기 사업’으로 단장 된 서울 암사동 서원마을. 담장을 낮추고 도로 옆에 화단을 만들었다. [사진 성남시]

 맞춤형 재개발 대상인 성남 구도심은 전체 면적 165만㎡, 거주 가구 수는 5만1600여 가구에 이른다. 주택이 대부분 20~40년 전에 지어져 2000년대 들어 꾸준히 재개발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23일 들른 태평2동은 주택 외벽 곳곳에 금이 가 있었다. 일부는 어른 손이 들어갈 만큼 벌어져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주택이 빽빽이 들어서 건물과 건물 사이 간격이 1m 남짓한 곳이 허다했다. 통풍이 잘 안 돼 곳곳에서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 마을에서 20년 넘게 산 지영배(59·여)씨는 “건물 소유주가 제대로 관리를 안 한 집들은 (세입자들이) 호흡기·피부병에 걸릴 정도”라며 “낡은 건물이 많아 마을이 슬럼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성남시는 소규모 맞춤형 재개발을 추진하면서 처음엔 부담을 가졌다. 대형 재개발 포기에 따른 주민 반발을 걱정했다. 이에 대해 시범사업 대상지인 단대동 주민 윤수진(43)씨는 “부동산 경기 침체 때문에 인근 재개발 지역에서 이익이 아니라 수억원 빚을 지는 이들이 나오는 것을 많이 봤다”며 “이 때문에 이웃들이 큰 부담 없이 환경을 개선하는 소규모 재개발을 받아들이게 됐다”고 전했다.

 성남시는 재개발하는 구도심을 친환경 주거지로 가꿀 계획 또한 갖고 있다. 마을 초입에 공용주차장을 만들어 골목에는 차량이 못 들어가게 하고, 대신 골목을 순환하는 친환경 전기차를 도입한다는 것이다.

 이재명(49) 성남시장은 “성남 구도심에서는 맞춤형 주택 재개발뿐 아니라 시립의료원을 세우는 등 종합적인 주거환경 개선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글·사진=윤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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