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판결에 컴퓨터 이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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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사법사상 이례적으로 「컴퓨터」로 형량을 통일해 보자는 「형량정립에 관한 연구」결과가 대법원 김윤행판사에 의해 12일 발표돼 법조계의 화제를 모으고 있다.
김판사는 이 연구에서 형량 결정「모델」작성의 첫 시도로 전체사건의 30%를 차지하며 또 그 사안이 비교적 평준화된 형법 제268조(업무상 과실·중과실)의 적용을 받는 교통사고사건을 주요한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컴퓨터」에 의한 형량정립방식은 우선 형량의 기준 (형법 51조=형량의 조건)에 따라 ▲피고인의 연령·지능·환경 ▲범행의 동기·수단·결과 ▲범행후의 정황 등 그 결정요인의 중요도에 따라 피해상수(상수)를 숫자로 결정하고 피해치(피해치)를 구하는 것이 제1단계. 이에 필요한 자료는 앞서의 요건 이외에 장해부위 및 치료기간 또는 재산피해액, 소년범여부, 집행유예기간 중 및 전과여부, 피해자와의 합의여부와 그 만족도, 사고의 종류, 도로의 종류 및 상태, 날씨와 시간, 심지어 미결구금기간 등 33개로 미리 판사에게 주어진 실문의 답으로 마련된다.
이 복잡한 과정에 소요되는 시간은 3분 남짓(서울공대전자계산소 IBM1130 이용) .
이 방식에 의한 형량과 실제공판의 것과를 비교해 본 결과 인도와 차도구별이 없는 곳에서 63세의 노인을 치어 6주의 장해를 입힌 사건에 대해 서울형사지법 합의1부가 금고8월에 집행유예2년을 선고했는데 「컴퓨터」는 금고8월에 집행유예 1년4월을 대답했고, 자동차끼리의 충돌사고에 대해 실제 선고량이 벌금5만원인데 비해 5만9천8백43원을 선고하는 등 엇비슷한 형량을 나타냈다는 것이다. 다른 사건의 경우 「컴퓨터」는 금고형과 벌금형 등 복수형을 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김판사는 복잡한 사회현상을 숫자에 맞추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것으로 「컴퓨터」에 의한 형량은 양형에 대한 권유적인 참고자료일 뿐 실제운영은 별도문제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일부 법관들은 잘만 운용된다면 더욱 신뢰받는 법관의 판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조심스런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고.
그러나 한편으로는 재판이란 사람이 사람을 다루는 것으로 신성성과 그 독립성이 요구되는 것인데 아무리 기계화 시대 라지만 「컴퓨터」자료로 재판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법관의 자유재판권을 침해하는 요소를 포함할 것이라는 견해를 나타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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