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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델라 없는 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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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상언
런던 특파원

남아공을 돌아다니다 보면 고속도로 옆 갓길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아침이나 저녁에는 아예 줄지어 다닌다. 예외 없이 흑인이다. 대개 일터와 집을 오가는 중이다. 한두 시간 거리를 걸어 다니는 것은 보통이다. 대중교통이 변변치 못한 탓이다. 승용차가 없는 이들이 이런 고생을 피하려면 ‘미니버스 택시’(흑인들이 주로 탄다고 해서 ‘블랙 택시’라고도 불린다)를 이용해야 한다. 통상 한 장소에서 정원 15명을 가득 채워 출발한다. 명칭은 택시지만 버스에 가깝다. 한 번 타는 데 1000원가량을 낸다. 출퇴근 때 이를 이용하면 하루에 2000원 정도가 든다는 얘기다.

 이 나라에서 청소·경비 등의 저임금 노동에 종사하는 이들의 평균적 하루 임금은 7000원에서 1만원 선. 그중 2000원을 교통비에 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 보니 어지간해서는 그냥 걷는다. 그들에게 세상은 넬슨 만델라가 말한 ‘자유를 향한 긴 걸음(long walk to freedom)’이 아닌 ‘긴 걸음의 자유(freedom for long walk)’만 있는 곳일는지도 모른다.

 만델라 장례 취재차 10년 만에 다녀온 남아공은 적어도 외견상은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여전히 백인 동네에는 백인만 살고, 흑인 동네엔 흑인만 있었다. 백인 거주 지역 담장의 살벌한 전선 울타리(강한 전류가 흐른다)도 건재했고, 흑인 거주 지역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도 그대로였다. 만델라가 집권한 1994년 이후 최근까지 흑인들의 평균 소득이 두 배 가까이로 늘었음을 보여주는 통계도 있지만 요하네스버그 거리에서 배를 움켜쥐고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와 구걸하는 이들을 종종 만났다. 이 나라 흑인의 평균 소득은 백인의 약 6분의 1이다.

 만델라 대통령에 대한 추도식이 치러진 축구 경기장과 정부청사 마당에 차려진 빈소를 찾은 남아공인들은 99% 이상 흑인이었다. 그들은 장시간 줄을 서고 걷는 고통을 묵묵히 참아냈다.

 그들에게 과연 ‘만델라’는 무엇이었을까. 출장 중에 남아공인들에게서 자주 들은 만델라 칭송 중 하나는 그가 교도소에서 긴 바지를 거부했다는 일화였다. 그가 로벤 섬의 교도소에 수감됐을 때 긴 바지를 지급받았는데, 이는 백인 수형자용이고 흑인들에게는 반바지만 제공된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특혜를 사양하면서 짧은 바지를 택했다는 내용이다. 장례 기간에 방송에선 그가 대중과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줬다. 가볍게 몸통을 흔들고 양팔을 번갈아 앞으로 내밀면서 활짝 웃는 모습이다. 남아공인들에게 그는 동질감을 안겨주는 ‘우리 편’이었다. 그는 타고난 지도자였다.

 이제 남아공에는 그 만델라가 없다. 든든한 ‘내 편’이 사라진 세상은 대다수 흑인들에게 더 고단한 삶의 현장으로 다가올 것이다. 걸어가는 출퇴근길도 더욱 멀고 힘겹게 느껴질 것이다. 제 2의 만델라가 나올 때까지는.

이상언 런던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