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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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안티고네의 오빠 폴리네이케스는 조국을 등진 탓으로 죽은 다음에도 이장이 금지된다.
안티고네는 육친으로써 사자에 대한 의무를 다하려고 국법을 어겨 끝내 사형을 받는다. 소포클래스의 비극 안티고네의 줄거리다. 이 당시의 희랍에는 사체가 이장되지 않으면 그 영혼이 안식을 찾지 못한다는 신앙이 있었다.
서양에서의 이장의 풍습은 대개 이런 사고에서 나왔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여기에 또 재생의 사상이 덧 붙여 있었다.
세익스피어의『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묘소는 일종의 가족묘다. 선조의 사체가 대대로 한 묘 속에 안치되었다.
그러나 묘에 되도록 친근감을 갖게 하고, 밝게 만들려는 마음에서인지 유럽의 근대적 공동묘지는 매우 장려해가고 있다.
가령 이탈리아에서는 호화로운 묘비들을 세워 흡사 미술관과도 같은 인상을 준다. 독일에서는 수림이 우거진 원지에 장중하게 묘를 가꾸어 놓는다. 미국에서는 한결 더 화려한 잔디와 분수 등을 배경으로, 가이 정원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공동묘지가 곧잘 아베트 족이나 어린이들의 놀이터로도 둔갑한다. 문론 그들에게도 사자에의 경숭의 마음은 있다.
중국에서도 아득한 옛날에는「장」은 그저「장」의 뜻 밖에 없었다. 곧 되도록 사람의 눈을 피하고 또 농경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이장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었다.
몽골 족은 묘의 표시를 하지 않았다. 지금도 징기스칸의 묘가 어디 있는지조차 모른다. 그만큼 그를 신성시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중국에서 조상숭배사상으로 분묘 제가 생긴 것은 주나라 때부터였다. 이때부터 묘에 심는 나무는 사자나 우손의 신분에 따라 달라졌다. 그 높이나 크기도 달라졌다. 그것은 단순히 집안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서 만은 아니었다. 되도록 사자와 영혼이 편히 잠들 수 있게 하겠다는 것과 조상의 가호를 빌겠다는 뜻도 들어있다. 한마디로 묘는 곧 묘라는 사상이 밑에 흐르고 있는 것이다.
보사부에서는 묘지법의 개정을 서두르고 있다 한다. 우리나라의 재래식 묘역은 대체로 23평 정도이다. 그것을 6평 이내로 줄이자는 것이다. 그만큼 개발가능지역이 늘어나게 되는 셈이다.
일률적으로 마다 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해마다 묘지는 늘어난다. 그걸 억제할 수만 있다면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억제한다 해도 전체 야산의 46%밖엔 개발에 이용되지 않는다. 그 나머지에까지 일률적으로 규제한다는 것에는 별 실용적 의미가 없다. 또 6평 안팎으로 다닥다닥 붙은 묘역에서야 조상을 섬길 마음이 우러날 턱이 없다. 고려장만도 못한 살풍경한 곳이 될게 빤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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