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2)박 대통령...그 소박한 인간미 속에 의지|글 이선근<사학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개혁의 결실을 향해 첫발>
제4공화국이 출범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투철한 역사의식에서 취해진 10월 유신은 이제 그 결실을 향한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나는 한사람의 사학도로서 정치인 박정희 대통령보다는 올바른 민족사의 정립자, 예리한 역사관의 소유자로서의 박대통령을 더욱 존경한다.
몇해 전 박대통령이 서울대학 병원에 입원 중일 때 박대통령으로부터 역사에 관해 얘기를 나누고 싶어한다는 전갈을 받았다.
동서고금을 통해 국가의 지도자가 역사에 소홀치 않았음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50대의 대통령이 수술직후의 불편한 몸으로 우리 나라 역사를 또 한번 생각했다는 데는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나라에도 이조 말 영·정조 때 까지는 경연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당대의 고명한 학자들이 어전에서 시강을 해왔지만 그 후 오늘날까지 이 제도는 거의 시행되지 않았다.

<역사에 대한 깊은 조예 지녀>
나는 이를 인연으로 종종 박대통령 곁에서 국사를 논할 기회를 갖게 됐는데 박 대통령의 역사에 대한 깊은 조예는 어느 국가의 원수도 따라가지 못할 높은 차원의 수준이다.
따라서 5·16군사혁명에서 출발. 12·6 비상사태 선포, 10월 유신에 이르는 일련의 흐름은 역사의식을 가지고 보지 앉으면 풀이할 수 가 없다.
역사적 안목으로 볼 때 10월 유신은 5·16혁명정신을 궁극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이룩한 민족사의 일대전기였다. 미·중공, 일·중공의 관계개선으로 이룩된 새로운 국제질서의 개편 속에서 민족의 좌표를 설정하고 국가안위를 지키기 위해 내린 10월 유신은 박 대통령의 영단이다. 박대통령은 영도자로서의 자질과 역량 뿐 아니라 서민적이고 소박한 인간미가 어느 지도자보다도 풍부하다.
언젠가 박 대통령이 육 여사와 영식 지만군만을 데리고 승용차 편으로 경주 불국사를 돌아본 적이 있다.

<승용차에 촌로 태워 주기도>
칠순이 넘은 시골 할머니 한 분이 대통령의 모습을 알아보고 인사를 하면서 승용차에 한번 같이 탈 수 없느냐고 특청을 하자 박대통령 내외분은 이를 쾌히 응낙, 동승하게 했다.
앞좌석은 운전사와 경호원이 타고 있어 부득이 지만군과 함께 뒷좌석에 4인이 비좁게 앉아 경주시내까지 가는데 생전 처음 「세단」을 탄 이 할머니가 차멀미 때문에 구토를 일으켜 「쉬트」를 더럽혔지만 대통령 내외분은 아무 소리 없이 손수 이를 닦아내고 노파를 무사히 「버스」 정류장까지 모셨다. 흔히 볼 수 있는 촌노들과의 막걸리 대작이나 민정시찰도 그분의 따스한 체온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
끝으로 박 대통령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은 역사적 필연성에서 시작한 유신과업을 신념을 굽히지 말고 계속 밀고 나가 달라는 것이다.
1864년 대원군이 일본의 명치유신보다 4년 앞서 함흥유신을 단행했을 때 세금을 물게 된 양반들과 서원 철폐를 반대한 유림들이 연좌「데모」를 벌였지만 대원군은 「순유해민자 공자복생 오불노지」라는 한마디로 묵살해 버렸다.

<온 국민이 역사의식 인식해야>
『만약 백성을 해롭게 하는 자라면 공자가 다시 살아온다 해도 이를 용서치 않겠다.』는 이 한마디는 대원군의 굳은 신념을 단적으로 나타낸 것이기도 하지만 지도자가 모름지기 갖춰야 할 변함없는 소신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념과 소신의 그늘에 민의가 가려져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 5천만 민족의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항상 염두에 두고 항상 진정한 민의의 소재를 파악하는데 조금도 소홀함이 없기를 바란다.
또 우리 국민들도 10월 유신이 역사의 필연성에서 이뤄진 것인 만큼 무의미한 회의나 방관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참여의식을 가지고 혼연히 나서야 될 것으로 생각한다.
10월 유신의 성패여부는 곧 국가운명의 흥망성쇄와 직결된다는 역사의식을 국민 모두가 인식해야 될 것이다.

<사진 김정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