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슨 만델라 1918~2013] 그라운드의 용서와 화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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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1995년 럭비 월드컵에서 우승한 남아공 럭비 대표선수단 주장 프랑수아 피에나르(오른쪽)에게 우승 트로피를 건네고 있다. [요하네스버그 AP=뉴시스]

"스포츠에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하얀 피부의 럭비 선수들과 함께 선 검은 만델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1995년 6월 24일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럭비 월드컵 결승에서 남아공 대표선수들은 그와 함께 하나가 됐다. 강적 뉴질랜드를 연장 끝에 꺾고 우승을 차지하자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도 피부색과 상관없이 뭉쳤다. 그의 지론이었던 ‘스포츠를 통한 흑백 화합’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94년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면서 가장 먼저 내세운 것은 ‘용서와 화해’였다. 하지만 수백 년간 이어진 갈등이 쉽게 해결되긴 어려웠다. 흑인과 백인 강경파들은 각각 자신들의 극단적인 입장을 관철시킬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이에 평소 스포츠에 관심이 많던 만델라가 묘책을 냈다. 젊은 시절 아마추어 복서를 꿈꿨으며 축구에도 많은 애정을 가졌던 그는 자신에게 생소한 럭비에 주목했다고 미국 스포츠 전문지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가 전했다. 럭비는 남아공에서 백인우월주의의 상징과도 같았다. 네덜란드계 백인들은 럭비에 광분했고, 흑인들은 럭비를 경멸하고 증오했다.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흑인들의 응원은 남아공 대표팀이 아니라 상대편을 향했다.

 만델라는 반대를 무릅쓰고 럭비 월드컵을 유치했다. 럭비에 대한 관심도 끊임없이 내비쳤다. 숙청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던 백인들을 껴안는 한편 흑인들의 생각도 바꿔보려는 의도였다. 그는 단 한 명의 흑인을 제외하곤 모두 백인으로 구성된 스프링복스 팀을 남아공의 상징으로 키웠다. 그 결과 결승전에서 백인들은 흑인들의 저항 노래였던 ‘응코시 시키렐레’를 불렀고, 흑인들은 진심으로 백인 선수들을 응원했다.

 백인의 상징이었던 초록색 스프링복스 유니폼을 입은 만델라의 모습과 우승 후 대표팀 주장 프랑수아 피에나르가 만델라에게 유니폼을 건네는 장면은 화룡점정이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2009년 이들이 만들어낸 감동 드라마를 ‘인빅터스’라는 영화로 만들기도 했다.

 피부색으로 차별받지 않는 ‘무지개 국가’를 완성시킨 넬슨 만델라. 그가 만든 감동은 15년 뒤 아프리카 최초의 월드컵에서 되살아났다. 건강 우려와 집안 문제로 불참이 유력시되던 그가 등장한 것은 2010년 7월 11일 폐막식이 열린 요하네스버그의 축구경기장이었다. 9만여 인파는 ‘마디바(만델라의 애칭)’를 외치며 인종 통합의 상징에게 경의를 표했다.

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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