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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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영국 전 수상「앤트니·이든」경의『회고록』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는 영국 외상에 재임하면서「제네바」회의에 참석한 일이 있었다. 1954년4월부터 7월 사이. 이 회의는 한국 통일문제를 비롯해「인도차이나」전쟁의 종결과 그 전후 문제를 다루기 위한 세계 열강의 모임이었다.
그때「이든」외상은 느닷없이 숙소을 바꾸어 버렸다.
영국 외무성의 단골이다시피 한「제네바」호반의「호텔」에서 그의 친구 별장으로 여장을 옮겨놓은 것이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이든」외상은 당시 「제네바」의 유명「호텔」에 도청기가 방마다 장치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이든」일행은 이것을 예방하는 수단으로『회의를 계속하면서「테이블」을 두들기라』는 요령을 충고 받았다. 외부의 위성 음을 될수록 많이 이끌어 넣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이런 충고에 주의는 하지만, 예기에 열중하다 보면 잊어버리기가 쉬웠다』고「이든」 은 회상한다. 결국 중요한 얘기는 전부 새어나가고 잡담을 할 때나 그「충고」가 생각나더라고 한다. 당시「처칠」수상은 이런 보고를 받고『귀하의 안전에 필요한 비용은 물론 정부가 전액 부담하겠다』는 급전을 쳐서, 「이든」은 적이 흐뭇했다고 말한다.
도청 사건으로 미·소 관계가 미묘하게 냉각되었던 일도 있다. 그것은 미국의「헨리· C·로지」전「유엔」대사가 폭로한 사실에서 비롯되었다. 주 소 미국 대사관저에 있는 미국
정부의「심벌·마크」인 독수리의 눈 속에 도청 장치가 숨겨져 있었다. 소련 정보기관에서 한일이다.
미국의 폭로 잡지인「람프츠」는 지난8월 호에서 바로 미국의「도청 외교」를 폭로했다. 미국은 전자 정보 기술자에 의해 소련의 모든 암호 통신을 해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공산권 주위엔 무려 2천 개소의 전자도청 조직이 퍼져 있다고 한다. 따라서 공산권의 전략은 미국 쪽에선 공개 된 비밀이나 다름없다.
이런 일은 외교 막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파사이에, 또 어느 집단의 내부 파쟁에도 유감없이 그 성능이 발휘되고 있다.「닉슨」대통령은 최근 이른바 「워터게이트」사건으로 곤혹을 치르고 있다. 미국 민주 선거 본부에 도청기가 장치되어 있었는데, 그 범인 중엔 백악관의 전 요원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것은 정치적 추문으로 발전, 「닉슨」측은 창피를 면하기 어렵게 되었다.
요즘 화제가 분분한 일본의 조총련「헤게모니」파쟁에서도 그 문제의 도청 장치가 발단의 되었다. 말하자면 상대방의 심증에 귀를 대고있는 격이다. 이만저만 불쾌한 일이 아니다.
여기서 도청, 저기서 도청… 세상은 공상소설의 실연장이 되고만 것 같다. 이런 도청「포비어」(공포증)는 결국 인간 부재의 시대로 발전할지 모른다. 실로 우리는 이제 문명의 미아가 되어 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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